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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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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첫째, 양국 지도자 간의 ‘화학 반응’을 좋게 하는 데 초기부터 힘을 쏟아야 한다. 2001년 3월 미국의 초당적 외교관계위원회의 일원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방문해 의견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이 햇볕정책 지지를 약속해주고,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해주길 바랐다. 부시 취임 초기부터 위원회 멤버들은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너무 빨리 밀어붙이기보다는 부시와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김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조언은 무시됐고, 결과는 부시 행정부의 반발이었다.

약 1년 뒤 부시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 김 대통령을 만났다. 포용정책의 기본 철학에 관한 솔직하고도 광범위한 대화가 오갔다. 그들은 좋은 화학반응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두 나라 관계자들이 바랐던 것보다 1년이 늦은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뒤 첫 방미 때 백악관의 링컨 침실로 안내한 것도 전임 대통령 때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부시는 노 대통령이 링컨에 대한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 친밀한 화학 반응을 이루고 싶어했다.

둘째, 보좌관과 수석들은 정상회담 전에 만나 상대의 전략적 목표를 이해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학자들과 조언자들을 미국에 보내 미국 측을 이해하려 했다. 이는 노가 반미주의로 당선했다는 미국의 우려를 달래주는 움직임이었다. 방미 팀은 딕 체니 부통령,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등 주요 인사들과 4년간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다.

서울과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에서 요즘 이런 일을 준비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 대선이 1년도 안 남았기 때문에 방미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주요 대선 후보들도 만나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국내정치에 개입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초점은 현 정부에 맞춰져야 한다.

셋째, 한국 새 대통령의 보좌진은 미 행정부 관계자들과 작전통제권 이양이나 포용정책 같은 논쟁적인 사안의 세목을 논의하기보다는 장기적 전략 비전을 설명하고 조율하는 데 애써야 한다. 위기 상황이 닥치거나 문제가 안 풀리면 동맹 관계의 비전이나 장기 목표를 논의하기에 너무 늦어져 버린다. 과거 5년 동안 중요한 결정들이 두 나라 동맹 관계에 대한 전략적 비전 없이 결정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지도자끼리의 화학반응이나 한·미 동맹에 대한 전략적 비전 없이 취임 뒤 100일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비생산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초기에 몇 가지 목표를 잡아 눈에 띄는 성공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한국의 새 정부가 초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성공 중 하나일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FTA에 반대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에 들어설 새 정부가 한·미 FTA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불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의 새 정부는 부시 정부에서 이를 통과시키고 싶어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에서 한·미 FTA가 통과되려면 한국 정부가 미국 쇠고기에 관해 중요한 정책 전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한국에 전략적 비전과 결단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마이클 그린 전 미국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