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직원 연금도 횡령하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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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들어갈 곳에 제대로 들어갔는지조차 도저히 알 수 없게 돼버린 세상이다.고지서를 받고 낸 세금이 공무원의 사복(私腹)을 채우는데 쓰인 사실이 전국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이젠 월급봉투에는 꼬박꼬박 불입한 것으로 적혀있는 국민연금마저 기업주가 제멋대로 써온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종업원들의 국민연금을 횡령한 혐의로 10여명의 업주를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했다.국민연금이 어떤 돈인가.18세부터 59세까지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근로자 5인이상의사업장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국민복지의 축 (軸)이다.대부분의 근로자.국민들이 노후의 마지막 생계수단으로 의탁하는 돈이다.특히 사업주가 연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이 도산할경우 근로자가 업주분담금까지 모두 내야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업주의 고의 적 체납은 예사문제가 아니다. 이런 돈을 근로자들이 납부여부를 알 수 없는 제도상의 허점을 악용해 개인용도등으로 써온 기업주들,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를자처해온 사람들의 행태는 가증(可憎)스럽기까지 하다.회사사정이너무 어려워 연금을 일시 체납할 수도 있다.그러 나 이번에 구속.불구속 입건된 업주들 상당수가 연금횡령.체납에 대한 사법처리 지침이 알려진 지난달말께부터 일제히 밀린 돈을 냈다는 것을보면 이번 경우는 그런 불가피한 사정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한마디로 사용자로서의 기본적 성실 성을 갖추지 못한 파렴치한행위로 지탄받기에 족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허술한 운영에도 문제가 있다.국민연금법은 기업이 돈을 체납할 경우 국세(國稅)와 마찬가지로 독촉장 발부,재산압류및 매각절차를 통해 강제징수토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관리공단측이 사업자들의 요청에 따라 체납처분을 유예해주는등 미온적인 조처를 취해온 것이 이런 횡령사건의 밑거름이 됐다는게 검찰 분석이다.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30,40년후의 기금고갈을 걱정하고 있는 국민연금이다.기업주의 각성과 법에 의거한 연금공단의 엄정한 연금관리를 촉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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