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에 '친애하는 … ' 친서 보낸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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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인근 엘립스 공원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서 조지W 부시 대통령<右>이 가수 사라 에번스와 함께 캐럴을 부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 신고 이행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북한이 연말까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공개할 경우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AP통신이 6일 보도했다.

미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약속 이행으로 한반도가 비핵화되면 궁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이른다는 점을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시사했다"고 말했다. 이 통신은 "친서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미국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김 위원장의 희망을 충족시켜줄지 모른다"고 관측했다.

부시의 친서는 3~5일 평양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전달됐다. 미국 대통령 문양이 새겨진 백악관 공식 편지지에 쓰인 친서는 12월 1일자로 돼 있다. 부시가 1일 아침 직접 서명을 해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중국정책 보좌관인 폴 헨레가 2일 밤 서울로 가져와 힐 차관보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3일 방북한 힐 차관보는 김 위원장에게 직접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일 박의춘 외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친서를 전하지 않았던 힐 차관보는 5일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출발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박 외무상을 다시 만나 친서를 전달했다. 힐 차관보가 김 위원장에게 직접 친서를 전달하려다 불발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 의전 관행상 힐 차관보는 김 위원장을 만나기에는 격이 낮다"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북이 이뤄지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의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친애하는 위원장께(Dear Mr. Chairman)'로 친서를 시작, "충심으로(Sincerely)"라는 말로 마무리한 뒤 자필 서명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국방위원회 위원장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뉴욕 타임스는 "부시와 김정일 사이에 존재해 온 냉전(cold war)을 뛰어넘는 거대한 도약(a huge leap)"이라고 평가했다.

페리노 대변인은 친서의 성격을 "부시 대통령이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하는 건 북한에 달려 있다.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걸 알게 될 것'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 스스로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하기로 약속한 만큼 모든 핵 시설과 물질, 프로그램 및 확산 내용, 우라늄 농축 활동 등에 대해 전면적인 신고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고 페리노 대변인은 덧붙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친근과 선의의 메시지라고 본다"며 "북한의 핵 신고가 중요한 점을 편지 형식으로 무게를 실어 전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서울=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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