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평양 가는 힐, 워싱턴 가는 백종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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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오늘부터 2박3일간 북한을 방문한다. 힐 차관보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집중 협의할 예정이다. 원만한 합의가 도출될 경우 북핵 협상은 ‘불능화’ 단계를 지나 ‘폐기’라는 최종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북한이 빠지면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도 급물살을 타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북핵 협상은 심각한 파행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핵 프로그램 신고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미국은 핵무기 제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의 생산 내역, 2차 북핵 위기의 발단이 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의 추진 상황, 시리아 등 제3국으로의 핵 이전 여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가지 사항에 대한 만족할 만한 신고나 해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내 강경파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힐 차관보는 어떻게든 미국이 설정한 ‘커트라인’에 접근하도록 북한을 설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UEP의 존재와 시리아와의 핵 커넥션 의혹을 강력히 부인해 왔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증거와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측 주장인 만큼 무조건 부인만 해서는 결코 문제가 풀릴 수 없다. 사실에 입각한 성실하고 완전한 신고와 해명이 유일한 해법이다. 이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체제의 명운(命運)이 달린 문제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경제난을 타개하는 길로 갈 것인지, 고립과 파멸의 길로 갈지가 달려 있다.

힐 차관보의 방북과 때를 같이 해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워싱턴을 방문한다. 미국과의 종전선언 논의가 주목적이라고 한다. 종전선언보다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미국의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도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는 끝까지 종전선언에 매달리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지금 절실한 것은 북한의 성실한 핵 신고에 관련 당사국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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