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력 낭비 최소화하는 특검 되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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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삼성 특검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포기하고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다음달 4일 국무회의에서 특검법이 공포될 것으로 보이며 특별검사 선임 등 20일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대선이 끝난 직후인 다음달 하순께 특검 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그동안 삼성 특검법안이 대선 한복판에서 각 정파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만들어진 데다 위헌 요소가 짙다는 점에서 반대해 왔다. 정성진 법무부 장관 역시 재판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사건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법리상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우리는 독립적인 검찰 특별수사팀의 엄정·신속한 수사를 촉구했으며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비자금 의혹에서 거명된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수사·감찰본부를 발족시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23일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 구성원 다수가 찬성하고 있는 만큼 재의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법리가 아닌 정치 논리에 의해 또 한 차례 헌법 무시와 국가역량의 낭비가 불가피한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안타깝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특검이 피할 수 없는 것이 됐다면 이제 위헌 요소와 국가적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이번 사건은 의혹만 잔뜩 부풀려졌지 그것을 뒷받침할 확실한 물증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과거의 경우를 돌이켜볼 때 이런 유형의 사건에서 특검이 진실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검찰이 수사에 전력을 기울여 최대한 밝혀낸 뒤 특검에 넘겨줘야 한다. 그래야 특검 수사 기간을 단축해 국가적 낭비와 국제적 신인도의 실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삼성 역시 의혹에 대해 부인만 할 게 아니라 해명할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만약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면 차제에 이를 모두 털어버려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 태어남과 동시에 국제 경쟁에서 한 발 앞서나갈 수 있는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