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상황이라도 희망은 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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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남겨진 세상과 무인도에의 표류. 두 책은 심상치 않은 배경 속에서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저 암담하기만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난관을 어떻게 헤쳐갈까.

『티모시의 유산』은 백인 소년 필립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쟁 통에 배가 침몰돼 표류하던 끝에 필립과 나이 든 흑인 티모시, 고양이 한 마리가 무인도에 이른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시력마저 잃은 채 외딴섬에 머물게 된 필립은 선원 출신 티모시에게 의존하게 된다. 오랜 세월 바다에서 생활해 온 티모시는 소년에게 생존법을 가르친다. 구조될 날만 기다리며 섬 생활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강한 폭풍이 불어닥쳐 섬을 휩쓸고 지나간다. 티모시의 생명까지 집어삼킨 채. 필립은 섬에 홀로 남고서야 티모시가 남기고 간 소중한 유산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백인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흑인 티모시는 고집 세고, 무식하고, 애초부터 자신과는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안 따뜻함과 강인함을 느끼게 된다. 티모시의 무섭게 생긴 얼굴과 흑인 특유의 냄새도 싫어하지 않게 된다.
필립이 묻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의 피부색이 그렇게 다양한 걸까?” 티모시는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왜, 물고기도 색깔은 전부 제각각 아니냐. 꽃도 그렇고 말이야, 안 그래? 물론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지, 필립. 하지만 내 생각에 피부색만 다르지 그 속의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야.”

책이 출간된 1960년대는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래서인지 티모시와 필립의 우정이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루이스캐럴상’를 비롯해 11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는 의문의 바이러스로 어른들이 모두 사라진 뒤의 이야기다. ‘기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은 폐허. 가스·전기·수돗물은 물론 신선한 음식들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아이들은 빈 집이나 주인이 사라진 가게에서 통조림 따위를 가져다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얼마 안가 그마저 구하기 어렵게 되고 갱단의 약탈이 시작됐다. 영리한 소녀 리사는 궁리 끝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하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시 ‘글렌바드’를 건설하기에 이르고, 리사와 친구들은 그곳을 ‘진짜 도시’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간다.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 갱단의 위협 속에서 아이들은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글렌바드가 공동의 소유가 된다면 우리는 대표회의를 열어서 매사를 투표로 결정해야 할거야. 그러면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할 거고.”
“나빠진다고? 투표란 좋은 거야.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 모두가 의견을 보탤 수 있다는 건 공평한 거 아니니?”
아이들은 어른들이 비운 자리를 대신 채우기라도 하듯 말투·생각·행동을 따라한다. 도시통치방법·의사결정방법·전쟁대비법 등의 문제를 놓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가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아간다’는 줄거리다. 가상의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발표된 지 30년이 넘었다는 사실이 의아할 만큼 이야기 자체의 생동감과 교훈은 전혀 변색되지 않았다. 인종 차별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고,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이 이어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청소년 문학을 엮는 ‘VIVAVIVO 시리즈’의 첫 두 권이다. 두 눈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세상을 보게 된 소년과, 어른이 멸종된 세상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도시를 건설해 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고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반가운 책이다.

프리미엄 최은혜기자 ehchoi@joongang.co.kr
자료제공=뜨인돌 / 02-337-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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