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대선정국 정신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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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 대선은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결정하는 일이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가 지난주 ‘2007년 대선과 정당정치의 위기’란 토론회에서 밝힌 소감이다.

 삶이 안정된 정치학자의 생각이 이럴진대, 정치판의 빗나간 유탄(잘못된 정책의 피해)을 수시로 삶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일반 유권자들의 고민은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을 대표하고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 가야 할 대통령은 인격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 감정 표현이나마 제대로 하는 사람을 찾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대선 후보 검증 과정은 1년 내내 ‘누가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를 비교하는 이전투구의 장이었다.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누구의 정신과 행동이 더 병적인 걸까?’를 밝혀 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실제 부모를 외면하듯 시종 자신의 정치적 뿌리부터 부정하고 차별화하려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온갖 비리가 드러나도 그저 ‘죄송’이라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후보, 대선을 통해 두 번씩이나 기본적인 도덕성을 심판받고서도 이를 까맣게 잊기나 한 듯 다른 후보의 도덕적 자질을 운운하며 출마한 후보도 있다. 이는 분명 인격 장애, 건망증, 초기 치매 등이 의심되는 증상들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상대 후보와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그들의 정신세계는 놀랄 만큼 공통점이 많다. 우선 후보들은 한결같이 정신의학적으로 모든 문제점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투사(projection)’ 기전을 특별히 잘 활용한다.

 또 수많은 국민이 ‘어떤 국민?’이란 의구심을 보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 ‘국민의 부름’을 받고 나왔다는 출마의 변과 함께 자신이야말로 차기 대통령으로서 ‘최적임자’인 훌륭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과대망상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정신의학적으로 과대망상은 자신이 ‘위대하다, 전능하다’고 믿는 ‘사고 장애’인데 열등감·불안감 등이 있을 때 나타나기 쉽다.

 이런 난감한 상황 앞에서 수많은 유권자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인간의 대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에 직면했을 때 신속하게 의식·무의식을 총동원해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자기 보호 본능을 발동하기 때문이다.

 이미 기권을 결심한 유권자도 있고 지지 후보의 문제점은 애써 ‘부정(denial)’한 채 그저 ‘누구누구보다 덜 밉다’는 식의 반사적 감정 판단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귀찮고 힘들다며 대선 후보에 대한 막바지 검증이나 투표 자체를 소홀히 하다 자칫 함량 미달의 부적절한 후보가 선출되면 향후 5년간 그의 실책으로 초래되는 고통은 고스란히 평범한 유권자의 몫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대선에서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의 결과나마 얻기 위해선 건강한 정신으로 후보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려는 유권자의 의지가 필요하다. 유권자라면 싫고 귀찮더라도 다음달 19일까지는 대선 관련 뉴스에 최소한의 관심이나마 기울여 보자.

황세희 의학전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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