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성수대교를 잊지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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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수대교가 무너진 다음 토목 건설을 전공한다는 분들이 TV나신문에 등장하면 화가 치민다.그런 위기를 예측했다면 왜 단신으로라도 다리 앞을 막고 서서 사고를 방지하는 용감성과 전문성을보이지 못했는가 하는 야속함이 들기도 하고,산 업화.첨단 기술시대를 살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전문가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물론 토목학회가 전국 다리를 조사하고 붕괴 위험을 일찍이 경고했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다.그들 전문가의 소리가 어째서 먹혀들지 않고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답답함과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미 70년에 고속도로를 뚫고 중동(中東)이나 동남아(東南亞)에서 토목공사로 숱한 외화(外貨)를 벌어들인 우리가 어째서 이처럼 전문가없는 세상이 돼버렸는가.이유는 단 하나,정치 지도자나 행정가들이 전문가를 푸대접하고,전문가를 전문 가로 대접하지 않고 그냥 들러리로 세웠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본다.
경부고속도로 노선을 정할 때도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하고주장을 폈다.그러나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했다.대통령이 헬기를타고 현지를 수차례 답사한 다음「고 속도로는 이 노선으로 한다」고 손수 금을 그어버리면 모두 이의없이 뒤따랐다.
개발 독재시절의 이런 통치방식이 그럴듯하게 보여지면서 그 다음 대통령들도 이런 식으로 일관했다.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할 사항을 비전문가들이 결정하고,기술적으로 다뤄야 할 일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일이 능사로 벌어졌다.이러니「토목공학」 아닌「정치공학」이라는 자조적 농담이 공공연히 나돌게 된다.
권위주의 시절의 이런 폐단이 문민시대에도 답습되었다.지난번 옛 중앙청 건물을 허무느냐 마느냐 할때도 국립박물관을 어떻게 언제 지을지,과연 헐어야 하는지를 건축가나 고미술 전문가들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 결정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 족정기라는 명분과 감정에 밀려 옮길 박물관을 짓지도 않은채 헐어버린다는 비전문가적.정치적 결정을 해버렸다.전문가를 들러리로 세우고 모든 결정을 대통령이 해버린다면 다리 하나만 무너져도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고 비행기 한대 떨어져도 대통령 책임이요 잘못으로 비화하게 된다.
앞으로 다리를 어떻게 놓아야 안전하고 부서진 다리는 어떻게하면 최상의 안전도를 자랑하는 쪽으로 개선될 것인가.전문가적 입장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처리돼야 할 터인데도 개각등 정치적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을 뿐이다.여기에 시 공업자나 시청은 3개월 후면 성수대교가 복구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무너진 곳만 땜질해서 우선 사용해보고 다음 다리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심정인가.
세계토목학회나 건설업계 모임에서 캐나다 대표들은 금세 식별이가능하다고 한다.대부분이 양복깃에 퀘벡대교 배지를 붙이고 다니기 때문이다.캐나다 퀘벡시는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이 퀘벡시를 끼고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에 걸 쳐있는 퀘벡대교는 1904년에 착공,13년만에 완공된 세계 최장의 성수대교식 트러스공법 다리다.이 다리가 건설도중 두차례나 무너졌다.1907년 공사중 다리가 무너져 75명이 숨졌고,다시 1916년에는 교량 중앙부를 들어올리다가 난간 이 떨어져 13명이 숨졌다.이럴 수가 있느냐는 충격이 캐나다 건설업계에 팽배하면서 사고 원인을 밝히는 박사학위 논문만도 수십편이 제출됐다.퀘벡대교사고가 세계 교량 기술의 발달을 50년 이상이나 앞당겼다고 할만큼 전문가들의 뼈아픈 연구를 통해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았다.
***轉禍爲福 계기돼야 전문가라면 이런 긍지와 오기가 있어야한다.이런 오기와 긍지를 자랑할 수 있게끔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와 주문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에 따르는 자세를 보여야만 한다.「엄단하라」「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하고 호 령만 할게 아니라 전문가가 살아숨쉬며 제 본분을 다하게끔 체제 자체를 정비하는게 급선무다.
우리도「성수대교를 잊지 말자」는 배지를 달고「성수 치욕」을 되새기면서 성수대교를 완전히 철거한 다음 우리 토목건설 전문가집단들의 중지(衆智)와 기술을 총동원해 오늘의 참상과 치욕을 만회할만한 세계 최고의 다리를 새롭게 건설해 보 자.그래서 전문가가 행세하는 세상이 되게끔 하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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