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의혹 검찰수사 방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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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압(筆壓), 글자 각도와 순서 및 크기, 활자 종류….

김경준씨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진실 공방은 검찰의 문서 검증으로 결판이 나게 됐다. 김씨 측이 '이면 계약서'라는 서류를 제시했고, 이 후보 측은 그것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 측은 계약서에 이 후보가 BBK투자자문의 실제 주인이었음을 입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있다. BBK는 김씨가 기업체로부터 투자를 받아 주가조작을 하는 데 활용한 회사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BBK는 김씨가 운영한 회사로 나와는 무관하다"는 이 후보의 말은 거짓이 된다. 결국 핵심은 계약서가 진짜냐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씨로부터 문제의 계약서를 받았다. 하지만 복사본이었다. 수사팀은 김씨에게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복사본에 대한 감정 결과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팀 관계자는 "서명 감정은 글자의 입자 등 미세한 부분을 확인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에 복사본은 활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정 작업의 포인트는 서명 위조와 계약 뒤 사후 조작 여부다. 김씨 측이 제시한 계약서에는 이 후보의 영문 서명이 있다. 따라서 계약서 작성 시기와 근접한 시점에 이 후보가 다른 곳에 사용한 영문 서명을 입수해 대조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서명 감정 때는 필체뿐만 아니라 글씨를 쓸 때 종이를 누르는 힘인 필압, 글씨를 쓰는 순서, 글자의 구성을 두루 살피게 된다.

필압 감정은 특정 부분에서 종이의 눌림 정도를 입체현미경으로 측정한다. 복사본은 평면적이라 입체현미경으로도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 원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수사팀은 김씨 측으로부터 원본을 받는 대로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문서감정실에 보낼 계획이다.

대한문서감정사회 한용택 회장은 "필적 감정은 DNA 감식이나 마약 감정과 달리 변수가 많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라며 "감정 대상인 글자가 적을수록 어렵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시간이 지나면 필체도 달라지기 때문에 감정을 위해서는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평소 필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서의 사후 조작 여부 감정도 중요하다. 활자의 종류와 프린터 기종을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김씨가 비슷한 시기에 만든 문서의 활자와 프린터가 동일한지를 따지는 것이다. 종이의 생산과 인쇄한 시기도 분석 대상이다. 그 시점이 문서에 써 있는 작성 시기보다 뒤라면 더 이상 감정할 것도 없이 조작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 사건이 문서 검증 공방으로 접어듦에 따라 대선 후보 등록일(25.26) 전 수사 결과 발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김씨 측은 23일까지 계약서 원본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문서 감정에는 통상 2주 이상 걸리며 아무리 서둘러도 일주일 이내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김씨를 다음달 5일께 기소하며 그때까지의 수사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언.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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