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바둑산책>떠도는 중국기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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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사회주의 국가 중국은 바둑도 철저하게 국가에서 관리한다.어린재목들을 선발해 소년궁(少年宮)이라는 곳에서 양성한다.이 「소년궁」은 학교나 다름없어 바둑선생은 물론 국어선생.역사선생.서예선생 등이 다양하게 가르친다.오직 이기는 방법 만을 가르치는우리의 연구생제도와는 대조적인 셈이다.
이렇게 길러낸 프로기사 중에서 국가대표를 뽑아 합숙훈련을 시킨다.천쭈더(陣祖德)9단.왕누난(王汝南)8단.녜웨이핑(섭衛平)9단.화이강(華以剛)8단.뤄젠원(羅進文)7단등 고위직급의 5인방을 제외하면 나머지 유명 9단들 역시 국가대표선 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에선 바둑이 체육이다.국가대표기사들은 빨간 글씨로 「중국(中國)」이라고 표기된 체육복을 입고 일사불란한 훈련을 받는다.이렇게 국가에서 길렀다 하여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대국료와 상금의 상당부분을 공제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90%를 공제했으나 3년전부터 70%로 다소 완화했다.획일적이며 타율적인 훈련에 얽매이는데다 파이트머니의 거의 대부분을 국가에 바쳐야 하는 중국 프로기사들은개혁.개방의 욕구가 가장 큰 부류중 하나다.시합 관계로 해외에나가 「다른 세상」을 자주 대하다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중국바둑협회는 고민이 많다.해외출장중 귀국하지 않거나 탈출하는 기사들이 적지않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활약중인 우쑹성(吳淞笙)9단은 정식 해외이민의 특유한 경우지만 미국에서 활동중인양이룬(楊以倫)6단(과거의 베스트10).장주주( 江鑄久)9단,그리고 일본에 체류중인 루이네웨이(芮乃偉)9단.공샹밍(孔祥明)8단.장시엔(張璇)7단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들 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의 기사가 여러명 더 있다.
중국바둑협회가 급기야『이들을 공식기전에 참가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일본기원에 발송하기에 이르렀으니 지난 91년의 일이다.더 많은 프로기사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던 것.
92년에 개막해 93년5월20일 끝난「제2기 응씨배(應氏盃))」에 중국기사들이 불참했던 것도 다름아닌 장주주.루이네웨이를참가시킨데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장주주9단은 천안문(天安門)사건때「중국바둑대표단」이라는 피켓을 들고 앞장섰다가 미국으로 탈출한 케이스이며 루이네웨이9단은그의 약혼자(92년 일본에서 결혼)였다.
장주주9단은 당시 공안원이었던 친구의 도움으로 중국을 빠져나갈 수 있었으나 이틀후 그 공안원은 총살형을 당했다는 슬픈 뒷얘기가 전해진다.
우쑹성9단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紅衛兵)등쌀에 혼이 난데다아들을 얻고 싶어 「1자녀 원칙」의 중국을 떠나 결국 득남(得男)의 소원은 이루었지만 그 기쁨도 잠깐.프로기사가 공식대국 한판 두지 못하고 아마추어들 지도나 하고 지내려 니 한마디로「지옥」이었다.그런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오게 되었지만 그래도그는 행운아에 속한다.
정처없이 해외를 떠도는 중국출신 유랑기사(?)들은 우쑹성9단을 몹시 부러워하며 공식대국에 참가할 날만을 갈망하고 있으니까말이다.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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