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1야당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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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를 찾기 힘들었다. 적어도 청문회 기간 사흘 중 이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진상규명이 안 돼서가 아니다. 그건 청문회의 일부 기능에 불과하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더 큰 기능이 있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 진상조사 청문회는 명칭만 거창했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맨송맨송한 청문회를 만든 주범이었다.

"편파수사 아닙니까."

"똑같은 잣대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여당 봐주기, 야당 목 조르기라는 인상을 받는데…."

"인상을 준다는 말에 유념해 공정하게 하겠습니다."

"…."

청문회에서 검찰 수사의 편파성을 철저히 따지겠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는 이처럼 겉돌았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예고됐다. 한나라당은 청문회에 공천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의원들을 그대로 배치했다. 공천심사위원.당 전략기획위원장.청문위원 등 1인3역을 맡은 홍준표 의원은 송광수 검찰총장이 증인으로 나온 11일 대검찰청 청문회에 불참했다. 그 시간 그는 당에서 공천심사를 하고 있었다. 원희룡 의원의 경우 출석은 했지만 宋총장을 상대로 한마디의 질의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불법 대선자금 혐의를 받고 있는 마당에 검찰총장을 상대로 무슨 질의를 하느냐"고 자조하는 의원도 있었다. "편파수사를 입증해 노무현 정부의 부도덕성을 국민에게 알리라"고 주문하는 당 지도부에 떠밀려 이들은 준비 없이 청문회 전선에 배치됐을 뿐이다. 질의는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치권의 주장에 따르면"으로 시작되기 일쑤였다.

증인들의 입에만 매달리다보니 진상 규명은커녕 되레 의혹을 부풀리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변명은 이랬다. "애당초 민주당이 하자고 주장한 청문회다. 우리는 민주당을 믿을 뿐이다."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그곳에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없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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