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殘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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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02면

여천NCC. 생소한 이 기업에는 지금도 ‘외환위기의 잔영(殘影)’이 있습니다.

10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죠.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석유화학 사업 의욕이 대단했습니다. 당시는 기계·자동차 등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석유화학 분야도 ‘과잉투자’ ‘과잉생산’ ‘과당경쟁’이라는 ‘3과(過)’ 지적을 받았죠. 대기업인 삼성·현대·LG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중견기업까지 해외에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지었기 때문이죠. 그들의 논리는 ‘중국 수요’였습니다.

국내만 바라보면 과잉이지만 중국 등 밖을 내다보면 옳다는 주장이었죠.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요즘 국내의 거의 모든 굴뚝산업은 중국 시장 때문에 호황입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한국 기업인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과 국민은 당시 ‘금융의 위력’을 알지 못했습니다. 몇 년만 참고 견디면 곧 호황이 올 것이 뻔한 데 코앞에 자금난이 닥친 거죠. 전 국민이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던 흑자부도가 이어졌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인 11월 21일. 우리가 ‘경제의 국치일’이라 했던 10년 전 그날입니다. 나라의 금고가 비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외환위기죠. 이후 기업들은 구조조정으로 쓰러지고, 합치고, 팔리고…. 국민들은 명예퇴직으로 내몰리고, 빚더미에 나앉고, 가정은 파탄되고….

외환위기 때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NCC를 50대50으로 합쳐 여천NCC라는 회사를 만들어 공동 경영하기로 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민간자율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1호’였죠. NCC란 나프타 크래킹 센터(Naphtha Cracking Center)의 머리글자죠. 나프타를 열분해해 석유화학산업 기초 원료를 만듭니다.

어쨌든 여천NCC는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는 중국 특수 등으로 호황입니다. 하지만 이 기업은 요즘 대림과 한화 출신 인사들이 화학적 융합을 못 이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국민도 이제 한숨은 돌렸지만 후유증이 여전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 회복한 사람도 있지만 지금도 헤매는 사람이 많습니다. 양극화라고 하죠. 이혼율이 늘어난 것,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 것 등도 모두 외환위기의 잔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위기를 겪은 영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과 맞먹는 사회적 충격으로 20년 동안 고통받았다고 합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외환위기 10년을 계기로 우리의 변화상을 조목조목 짚어봤습니다. 각면 아래에는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우리 경제의 모습을 필름과 같이 연표로 요약·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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