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가 국내에 돌아오던 16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BBK 사건 당시 LKe뱅크 직원이었고 이후 자신의 측근으로 있는 이진영씨를 극비리에 검찰에 자진출두시킨 것. 이씨는 서울시장 선거 때 이 후보 측에 합류한 뒤 서울시장 비서 등을 지내며 줄곧 이 후보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씨는 이 후보의 또 다른 측근 김백준씨와 함께 BBK 사건의 핵심 참고인으로 꼽혀왔다. 이 후보의 개인사를 맡아봐 온 김씨는 LKe뱅크 사업에도 이 후보와 함께 참여했었다. 두 사람이 검찰 수사에 어디까지 협조할 것인가는 BBK 사건에 대한 이 후보
진영의 태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안으로 여겨져 왔다.
이씨의 검찰 출두는 이날 아침 일찍 이 후보가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사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의 선택은 정치적 투쟁 쪽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지지율 1위인 대선 후보 측에 대한 수사가 부당하다는 점을 내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15일 저녁만 해도 “김백준·이진영 두 사람은 절대 검찰에 내보내지 않겠다. 검찰에 보내는 순간 대질신문 요구 등에 휘말리게 된다. 대신 변호인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이런 기류는 지난주 초 일찌감치 잡혔다. 실무진에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이 후보의 무관함을 밝히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중진들의 생각은 달랐다. 검찰을 100%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을 검찰에 내보내고 나면 검찰이 칼자루를 쥐게 되고, 그 뒤엔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할 수 없다”고 분위기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한나라당의 전략은 16일 아침 이 후보가 정면돌파를 택하면서 180도 선회했다. BBK 사건과 이 후보의 무관함을 적극 알리는 ‘공세적 방어’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 후보 측의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수세적 방어로는 국민적 의혹을 불식시키기 어렵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후보가 지뢰밭이 될지 모르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 후보는 15일 강원도 정책간담회 자리에서 “그 (BBK)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 문제” “대한민국 법이 아직 살아있고, 법을 담당하는 정부 조직에서 공정하게 잘할 것이라고 신뢰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 발언을 정치적 수사(修辭)로 해석했다. 그러나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사안을 법률적으로 풀겠다는 이 후보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발언”이라며 “이 후보는 ‘나는 떳떳하다.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강조해 왔는데 당이 이 후보의 생각을 잘못 읽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을 바라보는 이 후보의 시각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이 후보 측은 그동안 “이 후보는 무관하다. 검찰이 공정하게만 수사해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 후보의 정면돌파 결정은 검찰을 신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검찰의 의구심을 해소해줄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