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화제>영국 명문고교 외국학생모셔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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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려왔던 퍼블릭 스쿨(사립학교)이 요즘 체면불구하고「외국학생 모셔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수백년동안 영국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을 독점하다시피 배출해온 이튼.웨스트민스터.윈체스터등 기라성 같은 이들 사학은 한때 특권계급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정도의 폐쇄적인 입학제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한해 평균 1만파운드(1천2백만원)라는 살인적인학비를 감당할 만한 부유층 학부모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탓에 입학생 감소로 인한 고질적 재정난을 겪어왔다.그 대안으로 떠오른것이 외국학생의 유치다.학생모집 기준을 완화해 학교 의 명성과영국식 영어를 선호하는 외국학생들을 대거 유치한다는 전략을 들고나왔다.
그 결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던 사립학교의 외국인 학생수가 현재 1만명으로 급증하게 됐다.이는 사립학교 총학생 10만명의 10분의 1로 이들이 지난해 사립학교에 낸 돈만 1억5천만파운드(1천8백억원)규모로 집계되고 있다.
쪼들리던 영국 사학의 숨통을 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1등공신은 홍콩 학생들.97년의 중국반환이 임박함에 따라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홍콩의 경우 지난 한햇동안만 무려 1천5백명의 중.고등학교 학생들 이 영국의 사립학교로 몰려 들었다.
공산주의 붕괴이후 좀더 안정된 교육환경을 갈망하고 있는 러시아와 동유럽권의 학생들도 영국 사학으로서는 귀한 고객.
시장경제로의 이행과정에서 단시간에 부를 축적한 졸부와 기득권층의 자녀들이 쇄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태국.말레이시아.대만.싱가포르등 아시아권의 부유층 자제들도 적지않다.
이같은 학생구성의 변화는 영국 사립학교의 교풍마저 바꿔놓고 있다. 과거 특권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불어넣어 주기 위해학생들에게 강조했던 스파르타식 교육전통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추세다. 야간점호를 받고 기숙사 안에서는 반드시 찬물로 샤워해야 하는 전통도 최근 더운 물을 공급하는 학교들이 늘어남에 따라 사라지고 있다.
또 상급생이 하급생을 몸종처럼 부리면서 온갖 잔심부름을 시키고 경우에 따라 체벌까지 가했던 상명하복관계도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박장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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