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급락 → 펀드 투자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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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국 경제를 믿기에 밥 좀 줬어요.”(ID 기쁜연)

인터넷포털 사이트 다음의 한 펀드 카페에 8일 올라온 글이다. ‘밥 준다’는 말은 펀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펀드에 돈을 추가로 넣는다’는 뜻이다. 이날은 코스피 지수가 63.63포인트(3.11%) 떨어지며 2000선 밑으로 밀린 날이다. 급락으로 펀드 투자자들도 불안해할 법한데, 카페 분위기는 차분했다. 오히려 이 글 밑에는 “나도 추불(추가 불입)했다”거나 “밥 주고 싶은데 실탄(돈)이 없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웬만해서는 펀드 투자자들을 막을 수 없다. 주식시장이 큰 폭의 조정을 받은 날, 개인들은 환매에 나서기보다는 펀드에 돈을 더 집어 넣었다. 급락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여긴 셈이다.

15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협회가 국내와 해외 주식형 펀드 수탁액을 나눠 집계한 4월 말 이후 이날까지 코스피 지수가 20포인트 이상 급락한 다음날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평균 3492억원 늘어났다. 이는 4월 말 이후 하루 평균 국내 주식형 펀드 유입액(1652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펀드에 돈을 넣으면 바로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8일 지수가 6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것을 보고 펀드에 돈을 더 넣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은행에 가 돈을 넣었다면, 이때 펀드에 불입한 돈은 다음날인 9일 기준일로 잡힌다. 단 8일 장 마감 시각인 3시 이후에 돈을 넣었다면 10일 기준일로 펀드에 돈이 들어온 것으로 집계된다.

이를 감안, 지수가 급락한 다음날 기준일로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어김없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수 급락을 확인하고 개인들이 투자를 늘린 덕분이다. 8일 코스피 지수가 63.63포인트 급락하자 9일 펀드로는 6727억원이 들어왔다. 지수가 125.9포인트 폭락,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한 날(8월 16일) 다음날에도 국내 주식형 펀드로는 2071억원이 몰렸다.

굿모닝신한증권 이병훈 펀드 애널리스트는 “최근 코스피 지수 움직임과 국내 주식형 펀드의 수탁액 추이를 보면 정확히 반대로 움직인다”며 “이는 증시가 떨어져도 금방 회복된다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들의 이러한 펀드 투자가 증시를 떠받치는 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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