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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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24) 『모르면 약이지,알아서 병인 거여.』 『아따,매를 맞아도 알며 맞아야지.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여.』 『글쎄 모르면 약이라니까 그러네.』 『소문은 안 그렇던데 뭘.사고가 아니라 그놈을 잡아놓고 팬 건 조선사람이래.』 『하기 좋아서 하는 말이지 그럴 리가 있나.그리고 태길이가 누군데,매 맞고 견딜 위인이 아니잖아.』『아이구 모르겠다.믿고 싶으면 믿고 말고 싶으면 말거라.떠들어봤자 내 입만 아프지.』 두런 두런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길남은 천장을 쳐다보며 누워 있었다.
태길이를 꿇어앉히고 몰매를 때렸다는 얘기는 장씨를 통해 들었었다.다만 그애 입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너한테 왜 이 얘기를 하는 줄 아냐?』 『니까?』 『너도 한패라는 말이 그애 입에서 나왔다.』 『제가 뭘 했다구요?』 『너희들끼리 한 패니까 서로 다른 말 안 나오도록 하라고 했다더라.』 『그놈이 순 물귀신이네요.누굴 끌고 어디로 들어가자고그런 말을 했을까 모르겠네요.』 『너야 우리가 아니까 말이다만,숨기는 거 있거든 순순히 실토를 해라.여기 끌려와 있는 사람치고 독밖에 안남았다는 건 너도 알거다.』 장씨는 표정없는 얼굴로 길남을 바라보면서 뒷말을 다는 걸 잊지 않았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지만,설마 너도 그렇게 된 건 아니겠지.
』 『자기 편에서서 일을 하라는 말은 들었지요.』 『가와무라가?』 『네,그렇지만 난 그런 힘이 없다고 했습니다.사실이 또 그렇구요.』 난 도망칠 사람입니다.그 말을 애써 참으면서 길남은 말했었다.
『제 의심은 마세요.일본말 잘 한다는 거 때문에 조씨 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한거 같던데,하루 밥 세끼 먹기는 마찬가진데제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하겠어요.제가 누군데요.』 장씨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길남은 가만히 몸을 일으켰다.이리저리 구겨지듯 잠들이 들어 있는 사람들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길남은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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