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에 선물 주는 ‘삼신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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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제씨가 출산장려를 위해 기증한 ‘그네 타는 남매의 모습’ 석상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양영석 인턴기자]

12일 첫째 아이 출생신고를 위해 서울 도봉구 방학3동사무소를 찾은 김수희(31·여)씨는 깜짝 선물을 받고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출생신고 접수를 받던 공무원이 “출산을 축하한다”며 그에게 포장지에 곱게 쌓인 아기 타월 선물을 건넨 것. 김씨는 “생각지도 않게 동사무소에서 이런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받은 선물은 이 지역 주민인 성세제(62·사진)씨가 동사무소에 기증한 것이다. 성씨는 지난해 7월부터 사재를 털어 방학3동사무소에서 출생신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아기용품(3만원 상당)을 선물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깜짝 선물을 받은 사람은 225명에 달한다.

 4월부터는 매월 한 차례 백일을 맞은 아이를 둔 산모들을 동사무소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아기 백일 옷을 선물한다. 동사무소 옆 공터에 세워진 ‘임신한 여인상’과 ‘그네 타는 남매의 모습’ 석상도 그가 기증한 것이다.

 성씨의 이런 선행은 지난해 시작됐다. 세계적으로도 크게 낮아진 한국의 출산율을 걱정하는 신문·방송의 보도를 접한 그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많이 낳게끔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선물을 생각하게 됐다.

 “자원이 없는 가난했던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모두 국민이 열심히 노력한 덕인데 젊은 세대가 아기 낳기를 꺼린다는 소식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씨는 큰 부자가 아니다.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청계천에서 수리공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열심히 노력해 특고압 공기압축기 분야에서는 장인의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현재는 공기압축기 관련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선물을 마련하고 석상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은 총 3000여만원. 성씨는 이 돈을 철저히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마련했다. 사장이지만 자식들(2남 1녀)로부터 용돈을 받아 그 돈으로 재원을 마련했다. 그는 용돈을 털어 선물 값을 마련하기 때문에 골프 같이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그의 뜻이 처음부터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일부에서는 ‘선거에 나오려 한다’는 의혹의 눈초리도 보냈다. 성씨의 아내도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씨가 이런 눈초리와 오해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선물을 마련해 전달하자 주변에서 그의 순수한 뜻을 이해하게 됐다.

 그는 “아이가 좋은 데다 우리 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니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학3동 유지영 동장은 “다른 동 사람들이 ‘왜 선물을 안 주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며 “성씨는 지역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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