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수의등산칼럼>몽블랑 첫 등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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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알프스 몽블랑은 언제부터 사람들이 올랐을까.
지금은 몽블랑을 오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고 접근 코스도 많이 발달돼 있지만 몽블랑을 정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필요했다.
제네바 태생인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슈르는 1760년 몽블랑을 가리키면서 정상에 오르는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겠다고 말했다.드 소슈르는 몽블랑 산밑 마을에 찾아가 등산을 권유해 봤다. 그러나 산동네에서 태어나 산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산을사랑하기 보다는 의외로 두려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몽블랑 여기 저기에서 자주 일어나는 눈사태.기상변화로 그들은악마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산을 오르려 하지 않았다.거액의 상금은 산마을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상금이 걸린채 26년이나 지났는데도 몽블랑 등반을 시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드 소슈르가 직접 접근을 시도하지만 과학자인 그가 산을오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1786년 8월7일 당시 샤모니 계곡에서 수정을 캐 생계를 유지하던 작 팔마와 의사인 파카르가 샤모니에서 만나 계곡을 타고 등산을 시작했다.
이들은 봉송빙하에서 크레바스(눈과 얼음이 갈라진 틈)와 빙탑을 헤치며 강렬하게 내려쬐는 태양아래서 로프도 없이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발 한발 전진했다.고도 4천m가 넘으면서는 고산증의 영향으로 피로가 누적됐다.
작 팔마가 더이상 못가겠다고 하자 동료인 파카르는 짐을 받아메고 길을 재촉했다.
드디어 8월8일 오후6시30분쯤 만년빙하 능선에서 파카르와 작 팔마는 몽블랑 정상을 밟았다.두 사람은 수면부족과 피로.배고픔을 달래면서 캠프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4천8백m급 산봉우리에 대한 인간의 등반이 시작된 것이다.몽블랑 등정 소문은 유럽 전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샤모니에 여행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려는 등산인들은 많아졌고 초등자를 기념하는 동상이 몽블랑을 향해 세워졌다.
우리가 사용하는 알피니즘.알피니스트 라는 말은 이곳 알프스를배경으로 시작된 말이다.
이후 등반형태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대규모 등반대에서 소규모 등반대로,산소사용에서 무산소 등반으로,가이드등반과 가이드 없는 등반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과 루트가 개척됐다.
지금의 여행자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서 쉽게 알프스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상은 험하고 발로 오르는 일은 힘들다.
등산이란 새로운 길을 개척해 새로운 알피니즘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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