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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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거기 그대로 서.』 경찰복이 보였다.누가 신고라도 한 모양이었다.경찰복은 서넛쯤인 것 같았고 손에는 곤봉을 빼들고 있었다. 『짭새다 토껴.』 각자가 재빨리 상황을 살피는데 누군가소리쳤다. 몇명이 후다닥 튀었고 몇명은 붙잡혔는데,도끼와 통수와승규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재수없는 쪽이었다.빵을 들고 있다가 떨어뜨려도 버터를 바른 쪽이 꼭 바닥에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더니 내가 그 짝이었다.
우리가 끌려간 곳은 신촌역 앞의 파출소였다.거기까지 끌려가는동안,도끼와 통수의 몰골이 워낙에 흉했기 때문에 구경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기도 했는데,개중에는 우리학교 아이들도 꽤 섞여 있어서 승규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는가 하 면 적지 않은수의 아이들이 파출소 앞까지 따라오기도 했다.
순경들은 우선 도끼와 통수를 근처의 병원으로 싣고 갔다.그래서 승규와 나만 파출소에 남아서 긴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창밖에 몰려선 아이들을 가끔씩 쳐다보고는 하였다.
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 중에는 영석이나 상원이,동우의 것도섞여 있었는데,우리가 도끼네와 싸워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손을 높이 쳐들어 승규와 나를 향해 브이자를 그려보이거나 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순경들이 몇번이나 밖으로 나가 파출소를 둘러싼 우리학교 아이들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들의 수는 오히려 점점 더 불어날 뿐이었다.
승규와 나는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하는 기분이 들만도 했는데,그만큼 성식이가 당한 일에 대해서 많은 아이들이 화를 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 파출소 밖의 아이들을 헤치고 파출소 안으로 뛰어들어와내부를 한바퀴 둘러보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너희들 괜찮니.』 딸딸이 아저씨였다.학교에서 교문을 지키기도 하고 집일들도 맡아서 해주는 분이었다.
『거 당신은 뭐요…?』 책상에 앉아서 딸딸이 아저씨가 하는 양을 가소로운 시선으로 지켜보던 경찰 하나가 턱을 쳐들고 말했다.딸딸이 아저씨의 행색이 조금만 더 그럴듯 했다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 전 쟤네들 학교에있는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뭐하는 사람인가 이거요.』 『아 전… 수위 일을 보고 있는데요….』 경찰은 아무 대꾸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턱으로 파출소 출구를 가리키면서 나중에 짧게 내뱉었다.
『나가요.』 딸딸이 아저씨가 뒤통수를 긁어대며 파출소 밖으로나서는데 나는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옆자리의 승규에게 속삭였다.
『야 우리 앞으로는 딸딸이 아저씨가 하는 말 잘 들어드려야 겠어.』 승규가 고개를 끄떡였다.사실은 우리들도 딸딸이 아저씨의 말이라면 아예 무시해버리기가 일쑤였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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