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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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14)그날따라 갱 안쪽은 습기에 차 후덥지근했고,무더위를 느끼게 더웠다.좋군.꼭 사고나기 알맞은 날씨야.오늘을 놓치면 안된다.태성은 막장 안으로 들어서며 어금니를 몇번이고 악물었다.
몇사람 다칠지도 모른다.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그렇지만,그렇지만 말이다.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네놈들이 보기에 조선놈은 마냥 물에 물 탄듯이,넋도 없고 얼도 없는 줄 아는 모양인데,어디 한번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조선 징용공에 대한 이런 대우를 언제까지 참고 있을게 아니라한번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던 태성이었다.그러나 장씨 생각은 달랐다.제 집안 단속부터 하지 않고는 죽 쒀서 개주는 꼴이 되게 마련이니,미주알 고주알 징용공 들의 일을 일러바치는 놈들부터 찾아내서 잡아 족쳐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런 이야기가 서로 얽히면서 결국 장씨 쪽의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태성이었다.
바닷속,지하 막장 안의 더위를 참아나가면서 그들은 말없이 곡괭이질을 했고,파내어지는 탄들을 뒤쪽으로 뒤쪽으로 밀어냈다.다른 어느날과 다름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탄을 캐 나가면서 장씨는 이따금 고서방과 태성이에게 눈길을 돌리곤 했다 .숨이 멎는것같은 순간들이 지나갔다.
얼마가 지나서였다.장씨가 땀과 탄가루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돌리며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었다.이미 약속되어 있는,그것이 바로,이제부터라는 신호였다.
곡괭이를 벽에 기대어 놓고 엉거주춤 서 있는 태길이 옆으로 장씨가 지나치듯 다가섰다.그리고 한순간 장씨가 그 곡괭이에 걸려서 넘어지듯 시커먼 탄더미 위에 나뒹굴었다.
고서방이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뭐여? 뭔 일이여?』 실어내기 위해 모아놓은 탄더미에 쓰러졌던 장씨가 손을 다친듯이 왼팔을 잡으며 일어섰다.
고서방이 곡괭이를 든 채 다가섰다.
『야 장가야.너 어디 다친 거 아냐?』 그말에는 대꾸도 않고,한손으로 어깨를 잡은 채 장씨가 소리쳤다.
『이거 어느 놈 거야?』 태길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 거요.눈은 뒀다가 뭐에 쓰자고 뚫어가지고 다니쇼? 왜 그 곡괭이가 장씨 보고 뭐랍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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