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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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13) 고서방이 중얼거렸다. 『이러다가,어물전 털어 먹고 꼴뚜기 장사 나서는 거나아냐?』 『주둥이라고 나불거리는 게…거 일 앞두고 재수 옴붙는소리 좀 안 할 수 없냐.』 『만사에 조심이라 그말이다.』 막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조를 맞추어 줄을 서면서 장씨는 긴장을 푸느라 농담처럼 말했다.
『태성이 너 태길이랑 이름자 같다고 봐주고 뭐 그런 일은 없기다.』 『쉿,와요.』 태성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댔다.뒤쪽에서 같은 조인 태길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그는 세 명의 뒤에 와 서며 중얼거렸다.
『날씨 한번 좋다.』 고서방이 소리없이 웃는다.
미친 놈, 지금 네가 날씨 타령 할 땐 줄 아냐.두어 시간 있다가 어디 그 입에서 날씨 조오타 소리 나오나 보자.
아침을 마친 징용공들이 줄을 지어 서면서 매일 반복되는 전시민간인이 가져야 할 자세며 한시도 천황폐하의 성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따위의 훈시와 함께 일장기에 대한 경례가 끝났다.일행은 길게 줄을 서서 아침햇 살을 등뒤에 받으며 갱에 들어섰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등불이며 채탄 도구들을 지급받고 나서 지하로 내려가면서였다.태성이가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며 장씨에게 말했다. 『기와 한장 아끼려다가 대들보 썩이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무슨 뜻이냐?』 『때를 기다리고 뭐고 없이,막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바로 해치우자는 겁니다.내가 우선 뒤에서 덮칠까싶은데,어때요?』 태성의 말에 장씨는 주위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약속대로만 하자.이제 와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너는 놈을 묶는 거야.』 장씨가 침을 삼켰다.
『고치 짓는 게 누에다.내가 한다.다른 놈 믿을 거 없으니까너도 한시도 마음 놓아서는 안돼.내가 우선 놈을 메어 꼬나박을테니까,그때 고서방이 올라탈거다.』 두 사람의 눈길이 살기를 띠면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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