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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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성식의 일기장을 보니까 정말이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성미가 준 일기장은 6월중순 것부터였는데,성식이 아치들에게 시달리기 시작한건 그 전부터인가 보았다.
「…J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J는 알았어 라고만 했다.J는 전화를 끊을 때까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화가 아주 많이 난 모양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J가 화를 낼만했다.그렇지만 통수형에게는 남의 사정같은 게 통하지 않는다.오늘은 팔천원을 줬는데도 뺨을 두 대나 얻어맞았다.그래서사실은 아직도 오른쪽 귀에서 위잉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나는 그 나쁜 놈들한테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연대 뒷산으로 끌려가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빠따를 맞았다.오늘은 통수형이 보이지 않았는데,그러니까 애꾸가 대장노릇을 하면서 나를 때렸다.열 대를 세어가면서 맞고 나서 애꾸가담배를 피라고 해서 담배를 폈다.담배를 한모금 빨고 내가 기침을 해대니까 도끼가 뒤통수를 주먹으로 때렸다.이번주까지 담배를열심히 연습해서 기침을 하지않고 연기를 삼키지 못하면 각오하라고 그런다.
월요일까지 또 오만원을 해가지 않으면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그러나 엄마에게 이젠 거짓말을 할 건수도 없다.아버지한테 모든 걸 다 말씀드리면 해결해주실 수 있을까 하고생각해봤지만,그러다가 잘못하면 내 등에 칼이 꽂 히고 끝날 것이다.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하숙하는 친구가 갑자기 아파서 돈을 좀 꿔줘야한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날 가만히 쳐다보다가,너 요즘 정말 이상해라고만 하셨다.그러면서 엄마는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학교에 와서 소문이 안날만 한 애들한테 하루종일 돈을 꿨지만 모두 삼만오천원밖에 되지 않았다.
당할 걸 생각하니 끔찍해서 교문 앞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겁이 나서 아프다고 그러고 학교에 가지 말까 그랬지만,그러면 엄마가 또 꼬치꼬치 물고 늘어질 것 같아서일단 학교로 갔다.노는 시간에 달수에게 의논해볼까 하고 몇번씩이나 망설였지만 정학을 먹고 있는 중인 달수에게 말해봤자 어쩌지도 못할 것 같았다.
하여간 도끼가 교문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다가 나를 불러세웠다.통수형이 보재.토끼면 오늘로 넌 끝장이야 임마.나는 도망칠까 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우리 학교 아이들이 주위에 깔렸지만 다 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통수형이 나를 벽에 몰아붙이고 칼을들이댔다.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노려보기만 하는데 나는 바지에 오줌을 쌀 뻔했다.통수형은 그냥 봐도 무서운 얼굴인데 그럴 때 보면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 돈이 있다고 말했다.그러자 도끼의 주먹이 얼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내가 코를 감싸쥐고 엎드렸더니 누군나 발로 등짝을 찍어댔다.」이거 뭐 이래…라고 내가 투덜거렸다.일기장을 중간에서 덮으면서였다.성미가 가만히 고 개를 숙이고 있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거긴 아직 양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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