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수도 코앞에 美군함 3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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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아이티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본사 김용일기자가 한국기자로는 처음으로 아이티에 입국했다.김기자는 아이티 군경의 추방위협과 삼엄한 경계로 수차레에 걸친 실패끝에 14일 이를 뚫고 팽팽한 긴장을 뿜어내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들어갔다.전쟁직전의 혼란과 극심한 경제난.반정부파에 대한 테러에 휩싸인 현지표정을 르포로 전한다(편집자 註) 11시간에 걸친 입국시도끝에 14일 오후4시(현지시간)기자가아이티국경 검문소를 넘어 아이티에 들어선 직후 아이티정부당국은오후7시부터 통금을 실시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아이티는 하나의 거대한 폐허 덩어리 같았다.곳곳에 허물어진 건물들이 방치되어 있었고 길거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거대한 쓰레기장을 방불케했다.길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길바닥에그냥 주저앉아 초점없는 눈동자를 하고있어 나라전 체가 철저한 무력감에 싸여있음을 실감했다.
포르토프랭스 시가지 숙소까지 3시간여에 걸쳐 들어오는 동안 시내는 통금령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어수선했다. 용달차같은 낡아빠진 차에 나무로 얼기설기 난간을 만들어 차한대에 30~40명씩 타고 다녔다.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미국의침공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은 숙소까지 오면서 이미 해안에 다가선 미국함정을 보고서 쉽게 알수 있었다.고나이부 섬 앞에는 3대의 미군함정이 시위순찰을 벌이고 있었는데 아이티 침공은 이제 시간결정만 남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오는 데는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우선 기자가 1착지로 머물렀던 도미니카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14일 오전 5시 출발해 아이티와의 국경까지 가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아이티와의 국경에서는 미국.캐 나다.도미니카.아르헨티나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국경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문제는 아이티 당국이 지키고 있는 국경검문소에서였다.구식총을 들고 삼엄한 경계를 펴고있는 아이티군인들이 보였다.
국경에서 1㎞정도 떨어진 검문소까지는 낡은 오토바이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어 돈을 받고 입국자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일정이 촉박해 취재비자를 받지 못한 기자는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입국이절대로 안된다는 통보만 받았다.미국에서 이미 받아놓았던 관광목적의 비자는 물론 소용이 없었다.낭패였다.사정을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고 되돌아가라는 말뿐이었다.도미니카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아이티국경에서 통하는 유일한 언어는 돈이다」는 말이었다.통역을 도와주는 현지인에게 약간의 돈을 주자 국경을 지키는군인들과 수군거리더니 들어가라는 것이었다.이곳 국경검문소에서 입국수속에 꼭 6시간30분이 걸렸다.
미국기자들이 탑승한 버스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간신히 동승해 수도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길은 아이티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농토는 황무지 그대로였고 2평도 채 되지 않을 것같은 흙으로 만든 움막이 띄엄띄엄 보였다.흙탕물이 흐르 는 냇가에서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이 간간이 보였다.
아이티에 뿌려진 미군의 선무전단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자가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호텔에 도착해서였다.현지어인 「크레올」어로 쓰인 전단에는 「이제 정의가 다시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다시 뭉쳐 새나라를 만들자」는 내용이 쓰여 있었 다.숙소 근처서 만난 30대 초반의 남자는『우리는 합법적으로 거의 모든 국민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미국이 우리를 침공한다면 죽음으로 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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