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美와 갈등 두려워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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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휴전협정을 폐지시키고 대신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외교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
40년전 휴전협정 당시의 정세는 한반도에서 발을 빼려고 조속한 휴전을 바라던 미국과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려던 한국의 줄다리기였다.
당시 李承晩정부로서는 아이젠하워 정부를 설득해 상호방위조약을받아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한국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은 이를 달갑게 생각지 않았고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해 있던 우리로서는 미국을 움직일 힘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李대통령의 외교 능력이 발휘되었다.
李대통령은 당시 가당치도 않을 무력통일을 내세우며 혼자라도 북진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실제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등 미국의애를 먹였다.
韓美방위조약을 받아내야 한다는 외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李대통령 스스로가 협상을 위해 만들어 낸 對美 갈등이었다.
미국은 당시 이러한 李承晩의 외교를 놓고「자살전략」이라 불렀다. 당시 협상 파트너였던 덜레스 국무장관은 협상을 끝내면서 李대통령에게『미국은 역사상 다른 나라에 당신에게처럼 이렇게 많은 것을 양보한 적이 없다』는 편지를 낼 정도였다.
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될 당시의 우리 처지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국력 신장으로 외교환경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좋은 외교 환경을 가지고도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핵 문제를 놓고 벌이는 외교 수준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91년 북한핵 문제가 대두됐을 때부터 북한의 목표는 분명했다. 우리를 고립시킨 가운데 미국과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北-美수교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북한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인데 이제 북한은 얻을 것은 다 얻은 국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과의 협조는 완벽하며 두나라 사이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두나라 대통령 간에 전화가 오가고 우리 외무장관이 뻔질나게 미국을 드나드는데도 결국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길로 가고 있다. 이는 미국으로서도 내년에 다시 출범할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유지해야 하고 11월 중간선거 전에 북한핵 문제를 빨리 마무리짓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 목표는 다르다.
북한이 절대 핵을 보유해서는 안된다는 점과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는 것이다.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려는 것을 두고 구걸하듯 남북대화도 병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려 할 필요가 없다.우리가 따돌림받을 정도로 약한 나라가 이미 아니기 때 문이다.반면미국이 뭐라고 해도 북한핵의 과거는 밝혀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그것이 안될 경우 북한핵에 대응할 우리 나름의자위 수단을 갖겠다고 떳떳이 공개해야 한다.
***國益 끝까지 지켜야 두나라의 외교 목표가 다르고 그에 따라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데 우리는 그저 원만한 韓美관계만 되뇌고 있다.
40년전 李대통령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갈등을 의식적으로만들어 對美외교를 벌였다.지금의 우리 정부는 존재하는 갈등조차덮으려고만 한다.그 갈등이 우리의 외교적 카드가 된다는 사실을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국익을 위해서는 갈등 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만큼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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