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허가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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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년간 물량·가격을 담합하려 하니 이를 허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정위에 특이한 민원이 접수됐다. 공정위가 ‘시장경제 최대의 적’으로 지목한 ‘담합’을 허가해 달라는 민원이다.

4일 공정위에 따르면 광주·전남레미콘공업협동조합 소속 1권역(목포·무안·신안·영암 대불단지) 소재 9개 회원사는 최근 공정위에 ‘공동행위 인가 신청’을 냈다.

 내용은 이렇다. 3년간 ‘서남권 레미콘사업본부’를 만들어 물량·가격을 함께 결정하고, 영업·운송뿐만 아니라 품질관리까지 공동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아 수익이 나빠져 생존마저 어려워졌다는 게 이유다. 그런 만큼 담합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에는 담합이라도 공정위의 인가를 받으면 시행할 수 있도록 ‘예외적 인가제도’를 두고 있다. 물론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연구·기술개발 ▶불황의 극복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 ▶산업 구조조정 ▶거래 조건 합리화 등에 있어 담합의 효과가 경쟁보다 낫다고 판단될 때에 한해서다. 하지만 공정위가 인가를 해줄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공정위의 인가를 받아 시행한 담합은 총 7건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10년새 인가를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인가를 받아 시행했던 7건 가운데 업계의 불황 극복이나 경쟁력 향상과 관련된 사항은 없었으며, 중소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시행했다가 종료한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일단 관련 내용을 공고하고 레미콘 수요 업체들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

공정위는 이들의 행위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뒤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인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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