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DVD 골라드립니다’- 마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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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14면

알랭 레네 감독이 여든넷의 나이에 발표한 ‘마음’은 알렌 에이크번의 희곡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두려움』을 각색한 영화다. ‘스모킹/노 스모킹’에 이어 에이크번의 희곡과 두 번째로 만난 레네는 배경을 런던에서 파리로 바꿔 희비극 영화를 완성했다.

저명한 프랑스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06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는 등, 이미 걸작의 반열에 올라 있는 ‘마음’은 여섯 파리지앵의 이야기다. 부동산중개인 티에리와 여동생 가엘, 티에리의 비서 샤를로트, 호텔의 바텐더 리오넬, 약혼한 사이인 니콜과 단.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 그들 여섯은 일상의 공간에서 교차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레네는 보통 시간과 기억을 탐구하는 작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근작들에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공간이다. 공간은 사람들을 묶어주는 반면 단절시키기도 한다. 벽과 커튼과 유리로 나뉜 공간에서 외롭게 사는 인물들은 소외를 극복하려 애쓴다.

영화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흩날리는 눈’을 삽입해 인물 사이의 모호한 차이와 명백한 경계를 순백의 이미지 아래에 감추려 하나 현실은 그 반대다. 각자의 공간을 차지한 고독한 주인공을 비추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감독은 눈을 털어내고 소외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DVD는 레네의 영화 중 드물게 시네마스코프로 찍힌 ‘마음’을 충실히 재현한다. 영상이 다소 뿌연 것은 감독의 의도이므로 신경 쓰지 않길 바란다. 부록으로는 감독과의 인터뷰(19분)와 극중 TV프로그램으로 나오는 ‘내 인생을 바꾼 노래’의 풀 버전(28분)을 수록했다. 인터뷰가 특이한데, 스틸 사진을 배경 삼아 레네의 음성이 들리도록 해놓았다. 오디오 인터뷰만 허용한다는 레네 또한 ‘공공장소에서 개인적 두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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