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한번 더 생각했더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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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9월의 문턱을 넘어선 오늘도 여전히 나의 업무는 전화벨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소비자 보호원이지요? 며칠전 집에 찾아온 판매사원과 아이들교육문제를 얘기하다가 얼떨결에 영어교재를 사게 됐어요.막상 사놓고 보니 우리애가 당장 이용할 형편도 아니고해서 해약하고 싶은데….』 『아이가 몇살인데요?』 『이제 16개월이에요.』 『아니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무슨 영어공부를….』 『글쎄요.그땐 뭔가에 씌었나봐요.계약금으로 애 돌반지까지 맡겼어요.
』 은평구에 사는 지은이 엄마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지은이 엄마의 잘못된 조기 교육열과 판매사원의 감언이설로 지은이의 금반지는 어디론가 굴러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지은이엄마가 한번만 더 생각해 보았다면 사랑스런 지은이는 평생토록 뜻깊은 돌반지를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다른 일화.
『저어,어떤 아저씨가 회사로 전화를 해서 이 문제집만 보면 자격증은 쉽게 딸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라고 권해서 샀어요.』 『세상에 무슨 자격증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수 있나요.』 『저처럼 특별회원에게만 주는 문제지에서 거의 출제되니까 쉽게 자격증을 딸수 있고 자격증만 따면 월수 60만원이상은 보장된다고 해서….』 서울 강남의 번듯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양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다.김양은 정보화시대에 필수적인 자격증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지금도 수험교재 할부금 넣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요즘 우리사회가 무슨 병적인 증후군에 휩싸여 있지 않나 하는생각이 들때가 많다.심은 나무의 싹이 돋기도전에 열매부터 얻고자 하는 그 조급증은 아마도 필시 후천성일텐데 급하게 변화되고있는 세상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연을 담은 전화벨이 울릴때마다 왠지 아쉬움이 남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일까.언제나 그러하듯이 소비자보호원의전화벨은 울린다.그리고 끊임없이 울려야 한다.
다만 한번 더 생각해보는 지혜를 가지라고 소비자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한국소비자보호원 피해구제국 출판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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