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찰에 소환되는 첫 현직 국세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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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군표 국세청장이 금품수수 혐의로 오늘 검찰에 소환된다. 정상곤 전 부산청장으로부터 6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정씨는 건설업자 김상진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의 뇌물을 받았고, 이 가운데 6000만원이 다시 전 청장에게 건네졌다는 것이다. 전 청장은 수감 중인 정씨에게 이병대 부산청장을 보내 입막음을 시도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전 청장의 신분이 피내사자에서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현직 국세청장이 검찰에 불려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조만간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국세청장이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소환되는 것 자체가 낯 뜨거운 일이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수상쩍은 구석이 많았다. 정씨는 “1억원은 내 돈이 아니다. 내가 입을 열면 여럿 다친다”고 말했고, 전 청장은 정씨 사건 수사 검사에게 “1억원의 용처를 캐지 말라”고 상식 밖의 부탁을 했다.

 ‘입막음’ 심부름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병대 부산청장의 해명은 더 가관이다. 그는 정씨를 만나 “뇌물을 정치권이나 다른 곳에 줬다면 (이를 밝혀 봐야) 국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남자로서 가슴에 묻고 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나이답게’ 정씨 혼자 뒤집어쓰라고 부탁한 건데, 마치 조직폭력배의 대화록을 보는 것 같다. 최고위층 세무 공무원들이 이런 황당한 대화를 하면서 ‘국가를 위해’를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6000만원이 인사 청탁의 대가인지, 통상적 상납인지를 밝히는 데 주력하는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다. 요즘 세상에 어느 조직이 상사에게 인사를 잘 봐달라며 돈을 바치는가. 상납이라면 더 심각하다. 세무조사를 하면서 업체를 위협해 돈을 뜯고 그 돈을 나눠 먹는다는 얘기인데, 관행이라면 이런 상납이 이 건뿐이겠는가. 전 청장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본인은 물론 국세청과 이 정권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이 정부가 내세우는 ‘혁신’도, 국세청이 자랑하는 ‘따뜻한 세정’도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 권력기관인 국세청과 검찰의 감정 싸움은 사건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전 청장은 “거대한 시나리오가 쓰이는 느낌”이라고 말했고, 검찰은 “여기는 대하극 만드는 방송국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전 청장이 여론의 동정을 받아 볼 요량으로 그런 말을 했다면 잘못 생각한 것이다. 민심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국세청도 의혹을 덮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검찰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증거로 얘기하기 바란다. 명예를 걸고 진상을 밝혀라. 세금을 도둑맞은 국민은 이번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