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헛발질만 하다 만 종전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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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북한과 미국·중국 4개국 정상이 한반도에 모여 종전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개시를 선언하는 임기 말 이벤트를 연출하려던 청와대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정부 스스로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가 손에 잡히는 시점에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나 외교장관급에서 평화협상 개시를 선언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공연한 헛발질로 힘만 빼다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온 꼴이다.

종전선언의 개념과 시기를 놓고 그동안 정부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내부적 혼선을 빚어 왔다. 청와대의 ‘선 종전선언, 후 평화협상’ 주장에 대해 법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송민순 외교부 장관의 반박이 있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종전을 위한 선언’이라고 말을 바꿨다.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직 불확실한 상태에서 ‘종전’이든 ‘종전을 위한’이든 정상급 선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였다. 미국이 합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4자 정상선언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 놓고 있다. 평화협상이 개시된 이후 적절한 시점에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추동하기 위해 별도의 정상선언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시기를 북핵 폐기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내년 초께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폐기가 이뤄져 평화협상이 종결되는 단계에 가서야 북·미 정상의 대면이 가능하다는 게 미국측 입장이다. ‘종전선언 쇼’가 낄 자리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