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숲 할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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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세대와 대화하기 위해 선택

≫ 자격 얻으려 400시간 교육 이수

황명중씨가 헌수공원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숲과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러분, 참나무라 불리는 나무는 몇 가지 종류나 있는지 아세요? 날 따라 해보세요.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우리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여섯 가지나 돼요."

얼굴에 깊은 주름으로 뒤덮인 할아버지 앞에서 춘천시 신남 초등학교 3학년생 최하나 양을 비롯한 40여 명이 귀를 쫑긋 세운다. 청명한 가을 하늘, 햇볕 따사한 춘천시 헌수공원에서 생태해설을 하는 사람은 황명중(74)씨다.

그는 강원대 임학과을 졸업하고 36년간 교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제2의 인생을 고민하다 숲 생태 해설가를 선택했다.

자식들은 장성해 타지에 나가 있고 부인과 단 둘이 사는 황씨는 연금이 나와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4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자격을 얻으려고 400시간의 교육 과정도 이수했다.

학생들을 지도하기 위한 해설 자료들을 한 배낭 가득히 담아 짊어지고 산자락을 오르내리다 보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는 게 황씨의 말이다. 춘천 복지관에는 60세 이상인 숲 생태 해설가가 30명 이상 있다.

"내 나이 이제 희수(喜壽.77세)에 가까워 옵니다. 애들과 산자락을 헤매며 이렇게 지내는 게 더 없이 기쁘고 행운이라 여깁니다." 황씨의 말이다.

이날 헌수공원에서는 박태순(66)씨도 20여 명의 어린이들 앞에 섰다.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쳤고, 교회 장로인 박씨는 옆구리에 나무들의 나이테 표본을 넣은 꾸러미를 차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테로 동.서.남.북을 알아 낼 수 있다는 건 맞는 이론이 아니에요.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자라는 자리에 따라 다르답니다." 아이들이 눈빛을 반짝인다.

숲 생태 해설자 동료인 최학순(76)씨는 이날 어린 학생들에게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줬다. 활기찬 노년의 삶에 대해서 묻자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노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알맞은 일자리입니다. 정부가 돈을 주는 걸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신 고기를 나눠 주려고 합니까."

한규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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