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경제] 중국집 조리사 중국집 조리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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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21면

“날이 흐리고 비가 간간이 뿌리는 날엔 짜장면이 먹고 싶다. 캐나다에서 막내아들을 장가 보내기 위해 잠깐 귀국한 작은아버지도 공항에 내리자마자 을지로 안동장에 가서 짜장면을 드셨다고 했다.(중략)”

김용범 시인의 ‘짜장면에 대한 선언’은 이렇게 맛있게 자장면을 예찬한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부슬부슬 비가 온다. 야, 윤아야 짱꿰집에 전화해라”는 마무리 구절은 입맛까지 다시게 한다. 이런 자장면 예찬이 아니어도, 일요일 오후가 되면 중국집 전화번호를 뒤적이면서 한 움큼 침을 삼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앞으론 얘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구수한 자장을 볶고 쫄깃한 면발을 뽑을 조리사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 성산동에서 일식집을 경영하는 최모 사장은 최근 뜻밖의 낭패를 당했다. 인근 연남동에 한식·일식·중식을 모두 취급하는 뷔페 음식점을 내려다 개업 시기를 ‘무기한 연기’하고 만 것이다. 실력 있는 중식 조리사를 구하지 못해서다. 결국 그는 예정했던 것보다 달포 뒤에나 뷔페를 개업했다. 최씨는 “강남에서 중식당을 하는 친구에게 소개를 받았기에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며 “주위에 구인난을 겪는 중식당 주인이 여럿 있다”고 전했다. 서울 광장동 H아파트 단지에서 중국집을 하는 이모씨도 “조리사 구하기가 가장 골칫거리”라고 하소연했다. 월급 360만원을 준다고 해도 솜씨 좋은 조리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고급 중식당이든, 배달 장사를 주로 하는 동네 중국집이든 조리사 구인난이 심각해 보인다.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중식은 요리 숫자가 많다.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7~8년이 걸린다. 조리 특성상 센 불을 쪼이면서 하는 일이라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중식이 기피 대상이 됐단다. 물론 “과장됐다”(여경옥 중식조리협회장)는 얘기도 있다.

여경옥 회장은 “업주는 조리사를 구하기 어렵고 조리사로서도 좋은 조건을 찾다 보니 당연히 갭(차이)이 발생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일식 조리사는 형편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최 사장과의 얘기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 식당의 주방장인 천모씨가 들어왔다. 그는 “일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과 주방장이 말다툼을 벌였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라는 우스개 문제를 냈다. 이내 그의 표정이 바뀌면서 “당연히 주방장이 새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고 스스로 답을 내놨다. 천씨는 “일식 조리사는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얘기는 이렇다. 일식은 상대적으로 수련기간이 짧다. 하얀 유니폼을 입고 생선회를 써는 것이 폼도 난다. 그래서 일식 조리사 지망생이 부쩍 늘었다. 결과적으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났고 대접이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20여 일 남았으니 바야흐로 입시철이다.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를 약대, 의대, 교대에 보내기 위해 안달인 경향이 있다. 이른바 ‘사오정’ ‘오륙도’로 불리는 인력 구조조정 여파가 빚어낸 안정지향형 입시 풍속도다.

그러나 지원 학과를 정하기 전에 하루만 시간을 내서 시장을 ‘관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령 약대를 보내고 싶다면 동네 입구의 약국과 빵집, 중식당을 비교해보자. 실제로 약대 졸업생의 53%는 약국에 취업한다(200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물론 약사가 파산할 확률은 훨씬 낮을 것이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나 조건, 수입에서 약국이 ‘절대 우위’에 있지는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본인의 몫이겠지만, 지금 트렌드에 휩쓸리다가는 ‘20년 후’를 기약할 수 없다. 중국집 전화번호를 돌리면서 곰곰 고민해볼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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