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세계사 교과서 뜯어봤더니 … “서구중심 시각 맹목적 수용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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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나라 중고교 사회·세계사 교과서가 강대국 중심으로 구성돼 편중된 세계관을 심어줄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이옥순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등 관련 학자 7명이 2년에 걸쳐 ‘중학교 사회1’ 10종, ‘중학교 사회2’ 8종, ‘고등학교 세계사’ 3종 등을 분석한 결과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모아 최근 『세계사 교과서 바로잡기』(삼인)를 펴냈다.

 책에 따르면, 우리 교과서에 담긴 ‘세계’는 세계가 아니다. 미국·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중심에 놓고 그 밖의 세상은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만 봐도, 아프리카는 한 단원도 독립해 차지하지 못했고 오세아니아는 지리부분에서만 소개될 뿐이다.

 형평성에 어긋난 표현도 눈에 띄었다. ‘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대왕은 페르시아를 정복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슬람 교도의 인도 침입은 8세기 초부터 있었으나 …’ 등의 문장에서 드러나듯 ‘정복’과 ‘진출’, ‘침입’과 ‘침략’ 등의 표현이 특정 지역이나 문화권을 교묘하게 폄훼한다는 것이다.

 오세아니아를 ‘유럽인의 신대륙’으로 서술한 부분도 침략을 ‘개척’으로 포장한 유럽인의 시각만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원주민의 눈으로 보면 유럽인들은 개척자가 아니라 침략자이자 약탈자란 것이다.

 또 한 ‘중학교 사회1’에 실린 ‘니그로(인종)’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비판이 가해졌다. 이 말은 15세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람들이 피부가 검은 아프리카인을 부르던 말에서 비롯됐다.

 저자들은 이런 오류와 왜곡의 원인에 대해 “현지의 다양한 자료와 최근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교과서를 만들지 않고 주로 서구나 일본의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라며 “기존 교과서를 엄밀히 분석하고 수정하는 작업에 이제라도 착수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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