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계혼혈 佛 여류작가-이사벨 라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나는 꼭 절반이 한국인입니다.비록 프랑스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았지만 제몸엔 한국인의 피가 50% 흐르고 있습니다.한국에서자랐다해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이 정확히 반반이듯이 .』 한국계 혼혈 프랑스 여류작가 이사벨 라캉(37)이 최근 벨기에의 르 스와르紙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 나라인 한국과 자신의 정체성 문제,그리고 아시아에 대한 생각과 인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라캉은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은『머나먼 낙원』(라테스출판사刊)을 비롯,그동안 줄곧 아시아를 소재로 한 소설.기행문등을 발표해온 작가.요즘엔 새로운 작품 구상을 위해 무려 3천㎞에 이르는 인더스강 대장정에 나설 계획을 세워 유럽 문단 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AFP통신 창설자의 한명이자 대기자였던 막스 올리비에 라캉.지난 51~52년 한국전쟁의 종군기자로취재하다 어머니를 만났다고 한다.당시 시대상황을 놓고 볼 때 매우 유별난 로맨스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 기준때문에 결혼이 쉽게 성사될 수는 없었습니다.외할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주위 친척들도 대부분 고개를 내저었지요.하지만 아버지의 집요한설득에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습니다.특히 아버지 가 한국에 관한 기사를 엄청나게 써 보낸다는 말을 듣고 외할아버지 마음이 풀려 결혼을 허락한 것 같습니다.』 그녀가 아시아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2세때인 지난 69년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왔을 때다.뉴델리.랑군.도쿄를 경유하는 기나긴 여행이었는데 그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은 겨우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한국인의 저력을 누구나 읽어낼수 있을 겁니다.』 그때도 라캉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발견했다고한다.그녀는 당시 일기에다『가게들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맨 앞줄에는 잘 닦인 붉은 사과들이 빛난다』고 적었다.여기서 라캉은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도 체면.위신을 잃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뿌리깊 은 정서를 읽었다고 한다.그후「잘 닦인 사과들」은 항상 라캉에게 아시아 자존심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라캉은 또 매우 당찬 작가다.카누를 타고 인더스강 3천㎞ 대장정에 동행자 한명 없이 떠난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그녀의동행자는 생후 6개월된 아들과 책 몇권에 불과하다.
『모기약조차 거추장스럽지요.열린 감각으로 모든 것을 보기 위해서는 빈손이 최선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는 그녀에게 경이 그 자체다.아시아보다 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고그녀는 주장한다.『삶의 예술.향기,그런 것이 아시아이고 내게는영원한 상상력의 원천입니다.』 그래선지 라캉의 정서는 동양적인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다.그녀는 열반(니르바나)은 결국 각자의마음속에 있다고 강조한다.
『자신과의 합치와 조화가 니르바나입니다.행복,행복 하지만 그것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지 결코 길지는 않습니다.』 [파리=高大勳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