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후보 다르고 캠프 다른 ‘김경준 송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국 법원이 ‘BBK 주가조작 의혹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하면서 그의 귀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씨에 대한 검찰 조사의 내용에 따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회사 돈 380억원을 빼돌린 뒤 여권을 위조해 미국으로 달아난 적이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한때 김씨와 동업한 적이 있다. 또 이 후보는 BBK 사건으로 피해를 봤다며 김씨를 고소했지만, 범여권에서는 이 후보의 사건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 후보 측의 석연찮은 태도다. 김씨가 미 연방법원에 한국 송환명령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자 이 후보는 “국민의 돈을 갖고 도피한 김씨는 빨리 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의 이 후보 변호사는 김씨에 대한 신문이 끝날 때까지 송환을 늦춰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법원이 김씨의 송환을 승인한 뒤 이 후보 측 대응도 묘하다. 이 후보는 “순리대로, 법대로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조치를 받는 게 좋다”고 했고, 한나라당도 “김씨가 귀국하든지 말든지, 언제 귀국하든지 떳떳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후보 캠프 내의 법조계 출신 의원들은 “김씨의 대선 전 귀국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후보의 입장과 캠프의 입장이 다르니 의혹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셈이다.

 물론 3년 이상 송환을 완강히 거부하던 김씨가 갑자기 자진 귀국하겠다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선을 눈앞에 둔 지금이 협상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국내 정치세력의 유혹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떳떳하다면 김씨의 송환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 국민은 이제 삼류 정치공작인지 진실인지 냉정히 판단할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이 후보가 나서서 한나라당과 선대위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앞에서는 김씨의 송환에 찬성하고 뒤로는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국민은 이 후보가 의혹을 털고 대선에 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