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실존적휴머니즘이 뿌리-金旭東교수 평론집 이문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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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대 민중문학 진영으로부터「사회적 전망을 상실한 무정부주의자」「반이념 투쟁에 헌신해온 체제 순응자」등의 비판을 받아온이문열의 작품세계를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으로 재해석한 평론집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金旭東 서강대 영문과교수는 최근 간행된 평론집「이문열」(민음사刊)에서 『80년대의 비평가들은 오직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잣대로만 이문열문학을 재단하려 했다』고 전제하고『그러나 이 잣대는 이문열문학을 평가하는데는 걸맞지 않으며 이문열 문학은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민중문학 진영의 것이든 아니든 지금까지 이문열문학에 대한 평론 대부분을 관류하고 있는 주장은 그가 허무주의자라는 것이다. 김명인은 「한 허무주의자의 길찾기」라는 평론에서 이문열을 『기본적으로 허무주의자이며 문학으로 반이념 투쟁에 헌신해온작가』로 규정한다.박일용도 평론 「관념적 보수주의 이념의 서사적 구현」에서 이문열을 관념적 보수주의자로 간주하고 『구체적인현실문맥을 벗어나 공허한 관념에 탐닉하는 이문열의 문학은 필연적으로 허무주의적인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남호도 「낭만이 거부된 세계의 원형적 모습」이라는 평론을 통해 『이문열의 낭만주의는 허무에 흥건히 젖은 비관적 낭만주의혹은 반어적 낭만주의』라고 규정짓고『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러한 허무주의가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金교수는 이같은 주장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그는『이들평론가들이 이문열의 허무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이문열은스스로 밝히듯 허무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삶을 부정하는 염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金교수에 따르면 이문열은 삶을 비극적인 것으로 파악하지만 무의미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그리고 그 비극적인 현실인식 위에서새로운 삶의 의미를 구축하기 위해 절망한다.이 절망은 희망을 잉태하기 위한 과정이지 삶 자체와 모든 인간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金교수는 이같은 관점에서『이문열문학 전반에 나타나는 이념에 대한 부정도 사회주의를 겨냥한 이념적인 부정이 아니라 이념 자체가 갖는 억압적 성격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행하는 실존적 반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 한다.
따라서 金교수는『이문열문학은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던져진인간을 비극적인 존재로 보고 그러한 인식위에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다를바 없다』고 전제하고『이 때문에 이문열 의 문학세계는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의 시각을 통해서만 그 뿌리에 가 닿을 수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金교수의 이번 평론집은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이문열문학을 높이 평가하고 나선데다 정치상황의 변화로 작가의 현실참여 여부가 작품을 평가하는데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이문열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재 조명 작업의계기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와함께 90년대들어 새로운 이론을 선보이지 못하고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는 민중문학 진영의 비평가들이 과연 金교수의 주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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