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9) 바람이 분다.
바람이 마른 풀들을 흔들며 지나간다.멀리 방파제 위의 외등이오늘따라 흐릿하게 보인다.파도소리가 높다.
『할 말이 있어요.』 길남이 말했다.화순이 말없이 그를 바라본다.어둠속이라 얼굴 표정이 분명치 않다.
『듣고 있어요?』 화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일이 있어?』 『아마 곧 못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갑작스런 말에 화순은 별 생각없이 가볍게 물었다.
『왜?』 『그럴 일이 있어요.』 『뭘 가지고 말을 못하고 이러나 모르겠네.』 중얼거리듯 말하면서 화순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이런 시간에 이런 데서 조선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게그녀로서도 조심스러웠다.멀리 팔로 껴안듯 섬을 싸며 휘돌아간 방파제가 오늘따라 더욱 어둡고 드높게 바라보인다.바람이 지나가면 서 파도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목소리를 낮추면서 화순이 물었다.
『어디,다른 데로 옮겨가게라도 됐어?』 『그렇다면 좋지요.』『좋을 게 뭐람.어차피 어딜 가나 땅속에 들어가서 탄 캐기는 마찬가지 아닌가.하긴 뭐.어딜 간들 여기보다야 낫겠지.오죽하면여길 지옥섬이라고들 불렀겠어.한번 가면 제발로는 나오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하는 데니까.』 추운 듯 몸을 움츠리면서 화순이 말했다. 『알아?』 『뭘요?』 『전에는 이 섬에서 죄수들을 부려 탄을 캤었대.그래서 그런 이름도 붙었대.살아서 못 나간다고말야.나도 여기 와서야 들은 소리야.』 방파제 밑 공터의 마른풀들이 또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렸다.
길남이 말했다.
『나 도망쳐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화순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망을 친다니까요.여기서.』 『어디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