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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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8) 그랬나.그런 일도 있었던가.하늘이나 보며 누워 있어야 했다던 명국의 말을 되새기며 이시다는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누워서,다리가 잘린 채 누워서만 바라보던 하늘도 똑같은 하늘이었을 게다.오늘처럼 저렇게 맑았을 때도 있었을 테고,흐리며 비오는 날도 있었겠지.다 같은 하늘이지만 그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달랐던 거다.어디서부터가 하늘이고 어 디까지가 하늘인지를 우리는 모른다.나뭇잎이 흔들려야 바람이 부는 것과 같다. 이시다는 천천히 일어서서 창가에 가 섰다.조선과 일본,옷하나로 함께 비를 가린다는 말도 있었지.그렇게 가까운 나라다.
일본을 지나간 비가 조선에서 내리고,조선을 거쳐온 바람이 일본해를 건너와 후쿠이며 니가타를 때린다고 했다.어디 그 뿐인가.
이곳 규슈에서는 또 얼마나 가까운가.조선을 치러가면서 군사들을모아놓았던 곳도 이곳이었고,그때 붙잡아온 도공들이 머물러 살며자리를 잡았던 곳도 이곳이 아닌가.
이곳에 끌려왔던 조선 도공들 가운데 훗날 고향으로 돌아갈 수있는데도 그냥 남아서 산 사람에게 누군가가 물었다고 한다.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느냐고.그때 그 조선 도공의 대답은 간단했다.여기가 따뜻해서 그냥 여기 남아 살렵니다.어려 서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명국이 불쑥 말했다.
『살아서 저 땅을 밟으리라는 생각을 난 아직도 못합니다.』 이시다가 놀라는 눈으로 명국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데요.그리고 고향에도 돌아가셔야지요.여기야 타국… 남의 땅일 뿐.』 일본여자가 이런 말을,그것도 나 같은 사람에게 하는가.징용공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던가 싶어 명국의 눈길이 떨린다. 그러나 이내 명국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너희들을 내가 안다.입바른 소리,속다르고 겉다르고,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짓거리가 다르다는 걸 내가 한두번 겪었던가.그러나 이 여자의 이 부드러움만은,마음을 다하는 정성만은 믿 어주고 싶다. 이시다가 돌아서서 명국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며 말했다. 『힘 내셔야 해요.이겨내시고,일어서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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