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뺀 통일부 홈피 종일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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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통일부가 홈페이지에 있는 개성공단 관련 코너에서 '개혁.개방'이라는 단어를 삭제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기간(2~4일) 중인 3일 남측 수행원과의 오찬에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북측의 거부감과 불신감을 느꼈다. 서울에 가면 적어도 정부는 그런 말을 쓰지 않아야겠다"고 말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10일 "개성공단을 '자본주의 교육의 현장'으로 선전해 온 정부가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포기하는 것은 대북 경제 지원의 명분과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통일부가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는 "개성공단 활성화를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해 오던 정부의 입장을 스스로 뒤집었다"고 주장했다. 통일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날 "민족반역행위 하려고 꼬리 내리나"라는 글까지 실렸다.

그러나 통일부 당국자는 "개성공단 담당자가 자체 판단으로 수정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개혁.개방 용어 사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별도 지침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통일부는 9일 오후 홈페이지의 '현안 이슈' 항목 중 개성공단을 소개하는 내용 일부를 정정했다. 논란의 대상이 된 문장은 당초 "북한 관리 및 근로자들이 공단 개발 및 운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를 학습해 향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통일부는 그중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데…'란 부분을 '북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 및 경험을 습득하는 데…'라고 고쳤다.

통일부는 개혁.개방 단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됐음에도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표현을 되살리지는 않았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정례브리핑에서 "개혁.개방이라는 표현 자체가 상당히 (북한)체제를 흔들려고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단어들은 분명한 것 같다"며 "정부로서 그런 부분을 유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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