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 정권의 대북 저자세, 어디가 끝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통일부가 홈페이지 개성공단 코너에서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당초 문안은 “북한 관리 및 근로자들이 공단 개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경제를 학습, 향후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북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식 및 경험 습득”으로 바꾼 것이다. “개혁·개방은 북측이 알아서 할 일이고, 정부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발언을 통일부가 눈치 빠르게 이행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 정권의 대북 정책이 얼마나 무능하고 비굴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김대중(DJ)·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에 대해 우리 사회에선 ‘퍼주기’ 논란이 제기됐었다. 그럴 때마다 두 정권이 일관되게 제시한 논리가 있다. 그것은 남북경협과 대북 지원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 유도’였다. 이는 과도한 북한 지원에 눈살을 찌푸리던 국민들의 불만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원칙을 느닷없이 저버리고, 북측의 개혁·개방 여부에 대해 관심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남측은 무조건 지원하고, 이를 북측이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선 신경을 끄라는 뜻인가. 지원 식량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든 말든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는 얘기인가. 해주 경제특구 조성 등 수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을 추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국민은 세금만 내면 되지 그 돈을 어디에 쓰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북한의 개혁·개방’이 대북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목표인지 밝혀 보라.

노 대통령의 이번 인식 변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항의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큰 문제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기분 나빠 하는 대목에 대해선 모두 이런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한 예로 우리 내부에서 ‘납북자’라는 용어도 쓰지 않을 것인가. 남측이 수십 년간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용어를 써도 정상회담을 두 번까지 했다. 대북 눈치 보기는 이제 접고 ‘개혁·개방’ 용어를 원상 복구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