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잔수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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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32강전 하이라이트>
○·최철한 9단(한국) ●·황이중 6단(중국)

 장면도(165~176)=왜 ‘잔수’라고 했을까. 한 수로 선명히 보여주는 대세점이라든가 깊은 향취가 담긴 행마에 비해 접근전에서의 수읽기는 소소해 보였을까. 그러나 바둑은 잔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잔수에 약하면 사활을 알 수 없고 펀치력도 뚝 떨어진다. 적진에 진입할 수도 없고 내 땅에 들어온 적을 제압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잔재주를 연상시키는 잔수란 표현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흑165-이 한 수가 다시금 잔수의 힘을 보여준다. 흑이 안일하게 ‘참고도1’처럼 둔다면(당장은 백A가 있어 둘 수도 없지만) 백은 B의 한 수만 가일수하면 된다. 이건 눈 터지는 계가 바둑이라고 한다. 한데 황이중 6단은 165로 쭉 밀어 왔다. 가슴이 저릿해지는 수읽기다.

 ‘참고도2’ 백1로 뚝 끊어버리고 싶지만 흑2 다음 4로 붙이는 기막힌 맥점이 기다리고 있다. C와 D가 맞보기여서 백이 무너진다. 최철한 9단은 165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고 173까지 중앙 흑은 한 수가 늘어났다. 이젠 E의 곳은 거꾸로 흑의 선수. ‘참고도1’과는 대차다. 이 판은 235수에 끝나 흑이 3집 반을 이겼다. 흑이 약간 두텁다 해도 매우 미세했는데 165의 일격이 백의 추격을 봉쇄하는 결정타가 되었다.

 1회전에서 탈락한 최철한 9단은 힘없이 웃었다. 소년 시절부터 최고의 유망주였고 한때 이창호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최철한은 언제쯤 다시 돌아오려나.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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