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 산을 옮긴다-스티븐 스필버그의 ‘터미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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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13면

12시에서 12시5분까지 딱 5분간만, 그것도 오늘만 미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데다 경비도 없고 자동문이기까지 하다.

소설가 이명랑의 시네마 노트

“자, 바로 지금이야. 넘어가! 불법을 저지르란 말이다!”

JFK 공항의 직원 모두가 몰래카메라를 통해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빅터 나보스키는 문을 넘어가지 않는다. 대신 몰래카메라를 지켜보고 있는, 공항의 국장을 향해 “나는 기다려요!”라고 똑똑히 말한다.

그러면 크라코지아에서 날아와 미국의 JFK 공항 터미널에 머물게 된 빅터 나보스키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빅터는 JFK 공항에 오랫동안 연금되어 있는 상태다. 빅터가 미국의 JFK 공항에 도착한 날, 그의 조국 크라코지아에서는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이 끝날 때까지 빅터는 귀국도 할 수 없고, 미국으로 입국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JFK 공항 터미널에 머물며 쇼핑하는 것뿐이다. 이 정도가 되면 웬만한 사람들은 미국으로 몰래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빅터는 터미널에 머문다. 이 영화는 빅터가 공항의 바닥 청소부, 조리실 직원, 공항 직원들 및 터미널 상점들의 직원들과 마음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위기상황에 처한 한 사내가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빅터는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며 어떤 식으로 낯선 이들을 친구로 만들었을까? 특별한 방법이나 수는 없었다. 그것이 바로 빅터가 가진 유일한, 최고의 자산이었다. 빅터는 공항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술수를 쓰거나 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냉랭하게 대하는 공항 직원들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정직하게 말했으며, 그들의 도움 또한 바라지 않았다. 빅터는 카트를 모아 동전을 벌고, 동전을 모아 햄버거를 사먹고, 64번 게이트의 의자들을 붙여 잠자리를 마련하고,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거부당할 줄 뻔히 알면서도 매일 입국허가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보답 받지 못하는 유부남과의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스튜어디스(캐서린 제타 존스)를 위해 터미널 한쪽에 작은 분수를 만들었다.

기다림이 빅터로 하여금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게 했다. 빅터의 아버지는 40년 동안 빈 깡통에 재즈 스타들의 사인을 모았다. 딱 한 사람의 사인만 받지 못했는데, 빅터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반드시 그 스타의 사인을 받아 깡통에 넣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이토록 사소한 것을 위하여 40년을 기다리다니! 어떤 이는 혀를 차겠으나 어찌 보면 인생이란, 사소한 바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내는 꾸러미 같은 것이 아닐까.

변명하거나 큰소리 내어 주장하지 않으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내 방식대로 내 꿈을 이루어가는 사나이, 빅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맞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안 되는 게 어딨어?” 하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이명랑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건너가 명랑한 소설집 『삼오식당』 『슈거 푸시』 등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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