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관전기>불가리아.독일戰-엄청난 사건 고정관념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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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직도 파란은 끝나지 않았는가.세계축구의 판도가 뒤흔들리는 듯하던 예선전과 달리 기존의 질서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던 결승토너먼트에도 드디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불가리아가 독일을잡다니….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번 월드컵대회는 끝까지 세계 축구팬들의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4강으로 좁혀진 앞으로의 대전에서는 또 어떤 이변이 일어날 것인지 사뭇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는 노골적인 비기기 작전을 펼쳤던 불가리아지만 독일전에 과감한 정면대결로 나서 완승을 거뒀다.후반 초반에 페널티킥으로 먼저 실점한 것이 오히려 약이 된 측면도 없지 않다.그 실점 이후 불가리아는 경기 내용면에 서 독일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스토이치코프.레치코프의 연속골은 완벽한 것이었다.반면 독일은 일단 리드당하기 시작하자 세계 챔피언답지 않게 졸렬한 플레이로 일관했다.차분한 패턴 플레이로 만회골을 노리지 못하고 무조건 문전으로 볼을 올려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모습은 불가리아의 GK 미하일로프를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다.경기 종료 불과 1분을 남기고도 교체 멤버를 들여보내면서승리를 지키려한 불가리아의 용병술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경기 후 두팀 선수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불가리아선수들이나 독일선수들이나 과연 울만한 경기를 했다.서로 다른 이유에서….
하지만 불가리아의 기적 같은 승리를 마음 편하게만 바라볼 수없는 부분이 한국엔 있다.불가리아가 어떤 팀인가.이번 대회 이전까지는 본선 통산전적 6무11패에 지나지 않았고 86년 멕시코대회 조예선에서 우리와 수중전을 벌여 1-1로 비겼던 팀이다.물론 한국은 예선탈락했고 불가리아는 조3위,와일드 카드로 16강전까지 올라갔지만 당시 두팀은 대등한 전력을 보여주었다.그런데 8년 후인 지금 한국은 여전히 16강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불가리아는 4강을 확정하고 어쩌 면 더한 성과를 거둘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무엇이 이런 차를 불러왔을까.그 8년동안 한국이 그들보다 땀을 덜 흘렸고,돈을 덜 들였다고는 할 수 없다.한국은 불가리아의 성공사례를 여러 각도에서 눈여겨봐야만 한다.
대표팀의 지휘봉을 놓은 金 浩前감독은 한 채널의 중계방송에 나와 불가리아-독일전을 본 소감을 『하면 된다』는 한마디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었다.물론 그 말은 그르지 않다.하지만 무조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어떻게 하 는가」하는 점이 중요하다.불가리아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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