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후 첫 남북 정상회담(화합의 교향악 울릴것인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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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민족은 하나” 서막은 올랐다/「냉전 올가미」 벗고 화해시대 출발/함정없는지 「냉정한 가슴」도 필요
분단된 한반도,반세기 비극의 민족사에 민족화합의 교향악이 울릴 것인가.반목과 대립이 대화와 화해로,공멸의 경쟁체제에서 공존공영의 시대로 전환되는 민족 대서사시의 서막이 올랐다.새 역사의 문이 열렸다.
남과 북 정상의 대좌는 단지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다.
7천만 겨레 전체가 만나 손잡는 결합의 시작이다.분단과 대결을 청산하는 역사의 표징이다.재편되는 국제질서의 중심에 뛰어드는 상징물이다.50년의 사무친 통한에서 벗어나 한민족적 동질성·자긍심·체통·존엄을 되찾는 신호탄이다.감격의 자리다.
그러나 반면에 가장 냉정해져야 하는 자리다.열정은 있되 흥분의 불꽃을 걷어내야 한다.가슴을 식히고 차가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그렇지 않고서는 어디에 함정이,지뢰밭이 있는지 또 무엇이 계교인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냉철한 시선이 아니고는 민족 화합의 진정한 지름길이 무엇이고 걸림돌이 무엇인지가 판별되지 않는다.그래야 민족을 위한다는 것이 자칫 민족을 망하게 하는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정상회담 합의의 의미가 축소될 수는 없다.보다 더 큰 틀의 민족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남북이 하나가 되자면 그 이전에 우리 내부의의 식과 인식부터 통일시켜 나가는 작업도 필요하다.멀고 어려운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자각도 필요하다.
이번 합의는 정상회담의 의제를 없이 하자는 게 특징이다.그러나 논의해야 할 과제는 너무 많다.이번 회담의 극적 합의는 전쟁 직전과도 같은 민족 공동체의 위기 상황을 반전시켰다.공멸의 공포에서 일순간 평화의 기대로 바꾸어 놓았다.그러나 전쟁 공포의 원인을 제공한 본체는 제거되지 않았다.북핵의 불투명성은 여전히 평양의 심장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김일성주석이 이번 회담의 성사를 위해 성의를 보인 것은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지만,그러나 그 성의는 북핵의 투명성이 입증되는데까지 이어져야 값이 있다.
남의 진정한 신뢰도 거기에서 확보된다.
한 민족의 삶에 전쟁의 공포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그 고통의원인을 뽑아내는 일은 난제중의 난제이나 그렇기 때문에 두 정상의 의지·역량이 요구된다.
그 역량에 7천만의 운명이,한반도의 미래 역사가 달려있다.
한민족 공동체로 하여금 전쟁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두 정상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다.통일 논의의 출발점이다.냉전구도에 가둬놓은 민족의 비정상적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시발점이다.
이번 회담은 특히 첨예한 국제경쟁의 상황에서 성사됐다.화해와 공존으로 함께 가면 힘있는 민족,힘있는 나라로 남는 국제적 기로에서 합의됐다.민족적 웅비,도약의 기틀이 이번에 달렸다.민족 에너지를 분단상태,극한의 대결로 낭비해 국제사 회의 낙오자로 끝내 전락하느냐는 엄숙한 물음 앞에 두 정상,남북 7천만 민족은 함께 서 있다.
이번 회담은 이산가족의 꿈이 절망으로 굳어져가는 끝모서리에서 이뤄지게 됐다.전쟁통에 부모형제들이 갈라져 반세기가 흘렀으나 하루인들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한 대규모 공동체가 존재하는 곳이 우리 사회다.그들도 이번 북핵위기에 라면을 사 두기도 하면서 절망했을 것이다.모두들 다시는 못만나고 이렇게 끝나는구나 했을 것이다.몽매에도 못잊을 부모형제를 끝내,영원히 못보고 마는구나 낙담하고 또 좌절하며 울었을 것이다.바로 그 공동체에 이번 회담은 문자 그대로 복음이다.희망 이다.
그 희망의 이번 회담으로 우리 민족은 우리 문제를 과연 우리스스로 풀 수 있는가를 국제적으로 시험받게 됐다.지미 카터전미대통령의 조력에 고마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문제를 우리 스스로 풀지 못하고 아직도 여전히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말인가 하는 자문에 자괴심을 맛보았던 우리다.그러나 판문점 예비접촉의 신속하고도 극적인 합의는 카터의 조력을 그야말로 「친구의도움」으로 자리매김하게 했고,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문제는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했다.남북 겨레가 이심전심으로 민족문제를 깊게,진지하게 고뇌하는 계기가 됐다.그 민족적 고뇌도 회담의 실질 성과가 있어야 빛이 난다.
그러나 과거의 숱한 사례가 교훈이다.큰 기대만큼 실망도 크게 뒤따랐던 체험들이다.그런 실망스런 사태의 대비도 필요하다.냉정한 자세로 조심하며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어쩌면 우리는 지금 남북 할것 없이 새 남북관계를 열어가는 민족사중 가장 어려운 역사의 시험장에 들어서 있는지도 모른다.두 정상의책임이 막중하지만 동시대에 사는 7천만 모두의 책임 또한 여기에서 비켜날 수 없다.〈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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