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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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앞두고 있는 김선욱.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만난 그는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다가도 “매일 지칠 때까지 연습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완벽한 연주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박종근 기자]

3월 독주회, 5월·9월 협연. 피아니스트 김선욱(19)군은 이 공연들의 티켓을 모두 팔아치웠다. 정명훈·서울시향과의 협연 당시 한 관계자는 “별로 반응이 없던 청중들도 김선욱이 노출되는 순간 움직인다”며 "9월 열린 세 차례 연주의 티켓이 매진돼 ‘김선욱 파워’라는 말을 실감 했다”라고 전했다. 일정도 끊이지 않았다. 폴란드·독일·영국 등에서 독주·협연을 반복하며 한달반 동안 유럽을 세번 왕복한 적도 있다.

  그는 이처럼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아직 만 20세가 안된 ‘학생’이기도 하다. “스무살이 넘으면 기사에서 ‘군’대신 ‘씨’라고 써주나요?”라고 물으며 인터뷰를 시작한 그는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며 현재 잡혀있는 연주 일정을 채운 뒤 한동안 연습에만 몰두할 뜻을 내비쳤다.

 “3월까지 잡혀있는 연주 일정이 끝나면 한숨 쉬어갈 생각입니다. 얼마나 쉴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요.“

 올해 서울에서만 5개의 협주곡을 연주한 후 내린 결정이다. 2006년 9월 리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주목받은 이후 쏟아지는 일정을 소화해낸 지 만 1년을 넘긴 그다. 내년은 특히 그에게 중요한 해다. 2월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유학 경험 없이 ‘토종’으로 국제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렸던 그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부담도 클 법하다.

 그는 “한 도시에서 협주곡 5개를 연달아 치니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면서도 “쉴틈없이 이어지는 연주를 할 때마다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고 뿌듯해한다.

  실제로 연주를 거듭할수록 평가도 좋아졌다. 2월 협연한 베토벤의 ‘황제’보다는 5월의 베토벤 협주곡 4번이, 그보다는 9월의 브람스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스승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는 그를 두고 “자신의 결점을 금방 깨닫고 발전하는 영리한 제자”라고 평가한다. 빽빽한 일정 속에서 연습 시간을 적당히 나누는 것도 힘든 과제다. 가장 가까운 연주에만 매달릴 수 없이 그 다음에 연주할 곡까지 연습해야 한다. 김군은 “생각할 게 너무 많아 잠이 안 올 정도”라고 말했다.

 9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쇼팽 연주는 올해의 마지막 협연 무대다. 그는 “정말 인간적인 음색을 내는 오케스트라와 맞춰볼 수 있어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베토벤·브람스의 남성적인 곡에 이어 쇼팽에서는 어떤 해석을 들려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월에는 런던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런던필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거장 시나이스키와 호흡을 맞추는, 그의 경력에 중요한 연주다. 쇼팽·라흐마니노프로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세계를 무대삼는 그도 “런던 연주가 끝나면 파리를 혼자 여행할 생각”이라며 설레한다. 9일 연주는 오후 8시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02-751-9682
 

김호정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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