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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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6) 어둠의 늪 같은 바다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던 태수가 고개를 돌렸다.창마다 불빛들이 새어나오고 있는 광부들의 숙소를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올려다 보았다.
『부스럼이 커야 고름도 많다던데,그 말이나 믿고 있어야 하나.』 그 목소리가 침통했다.
『앉은뱅이도 말이다… 서는 건 잊어 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만.』 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러나.길남은 흘긋 태수를 돌아보았다.
『말은 그렇다만,어디 앉은뱅이가 설 줄을 몰라서 안 서는 거냐? 그게 다 형편이 안 되니까 못 서는 거지.』 『그 형편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말이다.』 『낸들 알면 이러고 있겠니.』길남이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춘식이가 말했다.
『그런 생각 해 봤자다.개꼬리 삼년 땅속에 묻어 둔다고 노루꼬리 될까.』 『너도 뭘 알기는 아냐? 오뉴월 개×에 보리알 끼듯 끼어들게.망둥이가 뛴다고 꼴뚜기도 뛸까.』 『얘가 말을 막 하네.』 그때 병원 문이 열리면서 길게 불빛이 쏟아져 나와그들이 앉아 있는 계단을 비췄다.불빛을 등진 간호원 이시다가 문밖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녀에게 다가섰다.병원 문을 닫으며 앞으로 나선 이시다가 말했다.
『환자는,지금 자고 있어요.』 『어떻습니까? 좀 나아지긴 했습니까?』 『모르지요.』 이시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돌아서려는그녀에게 길남이 물었다.
『어떻게 얼굴이라도 좀 볼 수 없을까요?』 『잔다니까요.그리고 의사선생님이 면회는 절대 안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잖아요.좋아지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텐데,왜 당신들 조선사람은 기다리지를 못하고 이 밤중에 와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요.』 『압니다.알지만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애걸하다시피 그녀에게 다가서는 길남의 팔을 태수가 잡아챘다.그는 덜컥덜컥 계단을 거칠게밟고 내려가며 말했다.
『씨도 안 멕힐 여자한테 말해 봐야 우리 입만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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