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북핵과 양치기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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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현충일 연휴에 TV에서 내가 본 것은 아주 대조적인 두장면이었다.국립묘지 풍경 위에 두드러지게 강조된 北核문제 장면이 그 하나라면,흐느적거리는 행락 인파들의 풍경이 그 다른 하나다.북한에서는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며 전 쟁에도,대화에도 다 준비가 돼 있다고 호언하는 모양이다.옛 소련권을 방문하고 있던 金泳三대통령 역시 우리도 자신있다며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공언했다.그런데 경포대 해안가에서 노니는 행락 인파는『모처럼 야외에 나오니 아무 생각 없이 참 좋네요』라며 브라운관을환하게 채운다.
난처한 불감증이다.과연 무엇이 일반 시민들을 그토록 아무 생각없게 만든 것일까.현충일이었다고 해서 한갓 애국주의에 기반한시민의식을 들먹이고 싶진 않다.다만 우리 사회와 문화의 심한 불감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오랫동안 정권 차원 에서 안보를 이용해왔다는 느낌을 주었던 정치권과 그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했던 언론이 혹시 그 불감증의 遠因이 아닐까.
이번 北核 문제만 해도 그렇다.연일 계속되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위기상황의 정도와 위기관리 능력의 수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쉽사리 지우지 못한다.
늑대와 양치기소년의 비유가 떠오른다.우리는 이미 양치기소년의거짓 장난 때문에 양떼를 잃고마는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어쩌면『늑대다!』라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혹은듣기 싫어하는 어린 양떼인지도 모른다.여기서 양치기소년의 역할이 새삼 강조된다.늑대와 양과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소통문화의 부재는 反평화와 反생명상태를 부채질하는 법이다.제대로 전하지 못하고,듣지 못하고,믿지 못한다면 이는 곧「서로가 서로의 늑대 상태」일 따름이다.진정한 소통문화의 회복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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