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악악대는 소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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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어사전을 보면 분명 표준어인데도 방언이나 은어인양 무척 생소하게 느껴지는 점잖지 못한 말이 있다.
「악악댄다」는 표현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맨 처음 익혔다.농구나 배구경기의 중계방송을 보면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의 악악대는모습이 화면 가득히 잡힌다.불과 몇년전만 해도 전혀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다.
내 딸 또래의 아이들이 유명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하면서 거의 광기에 가깝게 악악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물론 운동선수들이라 해서 연예계 스타 못지 않은 폭발적 인기를 누려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그런 점에 배가 아프다는이야기도 아니다.다만 떼뭉쳐 몰려다니며 악악대는 요즘의 청소년세대가 심히 걱정스럽다는 그런 뜻일 뿐이다.
『쟤들 왜 저런다냐?』 나는 텔레비전 수상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스트레스 풀려고….』 딸 아이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명료한 것이었다.저렇게 악악대면 스트레스가 풀리느냐고 물으려다나는 그만 두었다.그렇다는 명료한 대답이 또다시 딸 아이의 입에서 나올까봐 겁났기 때문이다.저런 방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충동을 너도 가끔씩 느끼느냐? 내가 정작 딸 아이한테던지고 싶었던 질문이다.다른 말로 바꾼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되는 셈이다.
너한테도 저런 방식으로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느냐? 문득 딸 아이가 안쓰러워진다.마치 경기장에서 악악대는 소리가 구조를 요청하는 단말마의 비명처럼 느껴진다.너무 이른 나이에 대학입시라는 가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린 우리의 딸들이 이미성공을 거둔 대중적 스타에게 자신을 투사시켜 고단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대리 보상받으려는 집단 몸부림으로 비로소 이해되면서 갑자기 속이 짠해진다.
그래서 나는 때마침 생각난 김에 딸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을 걸 새삼스레 두세번 쓰다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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