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각심보다 피의자 방어권 중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호 03면

신정아씨에 이어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영장 발부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법원의 ‘구속업무 처리기준’을 통해 신씨와 정씨 영장 기각의 논리를 재구성해보자.

법원 ‘구속기준’으로 본 신정아·정윤재씨 영장 기각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를 구속해 구치소에 가두려면, 우선 범죄 혐의를 구체적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 지난 16일 신씨 귀국을 앞두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과 비교해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은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보다는 혐의의 증명 정도가 한 단계 높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혐의가 인정되면 ▶일정한 주거가 있는지 ▶증거를 없앨 염려가 있는지 ▶도망할 염려가 있는지를 따진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해당하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쟁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다. 증거인멸 부분부터 살펴보자. 김정중 판사와 염원섭 부장판사는 각각 신씨와 정씨의 영장을 기각하면서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신씨)” “주요 관련자들이 이미 구속돼 있다(정씨)”고 지적했다. 피의자가 증거를 없애거나, 피해자를 협박하고 공범에게 압력을 넣는 것이 ‘물리적·사회적으로’ 가능한지를 보는 법원 기준과 다르지 않다.

다음은 도망할 염려가 있는지 여부다. 신씨에 대해서는 미국으로 출국한 시점이 수사 개시 이전이어서 도망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정씨의 경우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꼽았다.

실제로 법원 기준은 도주 가능성을 매우 꼼꼼히 살피도록 하고 있다. 직업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지, 가족 결속력이 있는지, 심지어 나이 어린 자녀나 노부모를 부양하고 있는지도 따진다. 직업이 없으면 생활이 불안정하고 종적을 감출 확률이 높지만, 연금 같은 안정된 수입원이 있을 때에는 도주 우려가 낮다고 본다. 또 집행유예나 벌금형 선고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도망할 소지가 작다고 평가한다.

법원 기준에는 신씨와 정씨를 구속할 수 있는 ‘마지막 근거’가 있었다. 바로 ‘형사정책적 고려’다. 뇌물 등 부패 관련 사건, 조직폭력 사건, 선거법 위반 사건 등에 대해선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키는 차원에서 일반 사건과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씨는 학력 위조가 사회문제가 돼 일제 단속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씨는 권력형 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영장을 발부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염 부장판사가 정씨의 영장 기각 사유 중 하나로 밝혔듯이 ‘방어권 보장’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처리기준에는 “방어권 보장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많이 적용될 것”이라고 제시돼 있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기준
 
■ 범죄혐의에 대한 상당한 소명
- 수사기관의 주관적 혐의만으론 부족
- 구체적 입증 자료 필요
- 압수수색·체포영장보다 증명 정도 높아야

■ 주거 부정
- 주거종류, 거주기간, 주민등록 유무 등 판단
- 여인숙 전전하는 경우 TV 등 소유 여부
- 확실한 신원보증인 있으면 기각 가능

■ 증거 인멸 염려
- 증거 훼손·변경·위조 가능성
- 공범·증인 등 압력 행사 가능성
- 뇌물·조직폭력 사건은 인멸 염려 큼

■ 도망할 염려
- 직업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지 여부
- 가족 간 결속력 및 가족의 의존 정도
- 불법체류 외국인은 도망갈 염려 많음
- 집행유예·벌금형 예상되면 불구속 원칙
- 휴대전화를 통한 연락 가능성
- 수배사실 모른 경우 도망으로 보지 않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