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상화의 길-점수로 학생뽑는 입시 바꾸는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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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약업자부부 피살사건을 계기로 우리교육의 문제가 다시한번 심각하게 인식되고,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학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입시에 쫓긴 나머지 인생에 대해 고민하거나 탐색하며 자기반성할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대학진학이 어려운 중하위권 학생들을 학교와 가정이 포용하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아왔다는 반성은 오래 됐다.
입시교육 때문에 학교에서 팽개쳐지고 밖으로 돌다 물드는 비행에 이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때다.
대학입시제도는 그동안 큰 줄거리만 해도 열두번 바뀌었다.
제도의 세부사항은 거의 해마다 바뀌어 왔다.그때마다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입시제도가 변천을 거듭하는 가운데 우리의 대학입시가「지켜서는 안될 원칙」을「지켜야 할 원칙」으로 착각하고 있는것은아닌지,또 어떤 원칙을 지키려다가 그것이 도리어 다른 큰 화를불러와도 그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 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우리의 입시제도가 안은 맹점의 첫째는 학력위주 선발원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원칙에 얽매여 인간성 평가,전인평가를 전적으로 도외시하고 있다.심성교육.덕성교육은 실종된 지 오래고 그것이 차지했던 빈자리에는 입시교육과 극도의 이기주의,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살벌한 경쟁만이도사리고 있다.
둘째,학생선발고사의 객관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고사의 객관도는 엄밀히 말해 채점방법에 관한 문제이지 문항이 객관식인가 주관식인가는 문항형식의 문제가 아니다.객관식 문항의 채점에서도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고 주관식 문항의 채점에서도 높은 객관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의 입시방법은 편협한 객관주의에서 벗어나 전문적인 주관의조화있는 종합이 요구된다.
셋째,학력을 하나의 점수로 표시하는 양적 접근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국어 70점」식보다「독해력은 아주 우수하지만 작문력은 훨씬 뒤떨어진다」는 식의 질적 기술이 가미된 평가가 바람직하다.모든 것을 점수로 표시하는 점수주의 의 맹점은 입시자체를 하나의 점수따기 경쟁,점수놀음,1점에 웃고 우는 희비극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넷째,여러 영역의 점수를 합산해 총점으로 입시당락을 판정하는것이 문제다.영역점수 합산의 모순은 너무나 명백하다.수학과에 지원한 학생이 수리영역에서 0점을 따도 다른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따면 합격한다.
영역점수 합산의 맹점은「10㎝+20g+30℃=60」과 같이 무의미하다.
그런데 우리는 수리50점+언어80점+영어60점=1백90점」으로 합산하면서도 태연하다.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여러가지 점수의 단순합산이 아니라 주관적이되 고도로 전문적이며 종합적인 판단능력이다.
이같은 입시제도의 문제점에 원칙없고 맹목적인 학부모의 교육열은 자녀가 감당할 수 없는 학력과 학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하급학교의 교육을 가혹한 입시교육으로 전락시켰고교육 본연의 모습을 볼썽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문제해결의 자세는 입시방법 위주의 접근법이 아니라 교육정책 전반의 재검토와 재조정을 바탕으로 하는 총체적 문제해결의 접근법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개혁적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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