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장 반대만 할건가(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울진군 기성면 한 마을에는 20세 넘는 주민이 3천8백여명이 살고 있다. 어느날 이 마을에 관리가 나타나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하면 가구당 3천만∼3천5백만원꼴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은밀히 약속했다고 한다. 이래서 마을 주민 2천1백50명이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하는 서명을 과학기술처에 제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 군의회가 이 사실을 과기처에 확인해보니 가구당 현금 지급은 어렵다는 회신이 왔다. 이러자 핵폐기장 반대 주민이 다시 2천3백여명이 되면서 반대시위에 나섰다. 지금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울진군 기성면의 핵폐기장 유치와 반대 의견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어 도로를 점거한채 경찰과 주민간 대치가 사흘이나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핵폐기장 설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부의 추진 방법과 이에 대응하는 주민의 접근 방식이 모두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먼저 정부는 어째서 핵폐기장 문제를 아직도 공개적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마을 주민을 하나씩 포섭하여 돈으로 흥정하고 도장을 찍게 했는지,여기에 대한 설명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핵폐기장 설치의 시급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0년 안면도 사태도 쉬쉬하며 유치작전을 벌였던 밀실행정 때문에 폭동처럼 과격화되었다. 또 양산군 핵폐기장 반대 시위도 은밀히 몇몇 유지를 회유한 탓으로 더욱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핵폐기장 설치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개화와 정면승부밖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의사결정 과정도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지원금이 문제가 아니라 핵폐기장의 위험도가 어떤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알아보려는 진지한 노력이 선행됐어야 했다. 핵폐기장 유치냐,반대냐를 은밀한 지원금 흥정으로 해결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도가 어느 정도고,이를 저장할 저장고의 안전도는 어떤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현대식 시설로 안전도는 보장한다지만 뜻밖의 0.001%의 위험도를 위해 어떤 조처를 할 것인지 주민 대표를 뽑아 기존 처리장을 견학하고,경우에 따라서는 외국 사정도 주민 대표를 현지에 파견해 알아봐야 한다. 지방의회도 무턱대고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무엇이 지역이익인가를 넓은 시야와 과학적 검증을 통해 확인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도로 점거와 방화는 핵폐기장의 유해여부를 따지는데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핵폐기장 설치 문제는 한 지역의 이기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원전에 의존하는 한 꼭 필요한 국가적 시설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역주민들을 공개적·과학적으로 설득하고 반대급부를 보장하는 소신있고 강력한 행정력이 긴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